[연합시론] 협치가 뭔지 보여준 청와대 원내대표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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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협치가 뭔지 보여준 청와대 원내대표 회동
  • 연합뉴스
  • 승인 2017.05.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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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청와대 오찬 회동은 새 정부 협치의 첫 시험대였다. 기대가 높았던 반면 우려도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청와대 측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것이 우선 보기에 좋았다. 문 대통령은 오찬 장소인 상춘재 앞뜰에서 각 당 원내대표를 일일이 마중했고, 청와대에 가면 누구나 달았던 이름표도 없앴다. 원탁에 둘러 않은 대통령과 원내대표들에게 한식 정찬이 차려졌는데 주요리가 통합을 염두에 둔 비빔밥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직접 만든 인삼정과가 후식으로 나왔다고 하니 '파격'이 이어진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패찰을 쓰지 말도록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들었다. 준비 없이 들어온 정부인데 디테일이 강하다"고 칭찬했다. 촌철살인의 말솜씨로 유명한 노 원내대표가 핵심을 짚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취임 9일 만에 이뤄진 이 날 오찬은 예정시간을 50여 분이나 넘겼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소탈하고 격의 없이 대화에 임하셔서 자연스럽게 의견 개진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제1야당의 대표가 이렇게 말할 정도이니 분위기가 좋기는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성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개헌 부분이다. 전날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간접적으로 개헌 얘기를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공약대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걸음 더 나가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국민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고, 선거 제도 개편도 함께 다루자고 제안했다. 대통령이 먼저 이렇게 나오니 다른 참석자들은 토를 달게 별로 없었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해 2022년 대선부터 4년 중임 대통령제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대선 기간 개헌 공약이 제대로 지켜진 예가 없기에 문 대통령의 공약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개헌 공약을 명쾌히 재확인함으로써 회의감을 품었던 사람들이 되레 머쓱하게 됐다. 수면 아래 잠겼던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물론이다.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한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각 당의 공약 중 공통된 것들을 먼저 이 협의체에서 논의한다고 한다. 언론·검찰·국정원 개혁, 치매 국가책임제, 아동수당, 출산·육아 유급휴가, 기초노인연금 인상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갈 듯하다. 곧 출범할 국정기획자문위에서 초안을 검토한 뒤 국회에 넘겨 5당 합의로 추진한다는 게 청와대 구상이다. 그 외에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 등도 별다른 이견 없이 합의를 봤다. 대부분 문 대통령이 먼저 제안하고 각 당 원내대표가 동의하는 형식이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어떻게 하면 정부·여당과 야당들 사이에 명실상부한 국정 협치가 이뤄질 수 있는지 알기 쉽게 보여준 회동이었다.

개헌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대통령제 외의 다른 권력구조도 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국회 개헌특위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체제에 소극적이었던 문 대통령의 생각이 그동안 달라진 것인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또 국회가 충분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 내 개헌특위를 두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대통령 스스로 개헌 추진의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걷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것은 막연해 보이던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가 이제 손에 잡히는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1987년 체제'의 적폐를 일거에 없애고 혁신적 정치체제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여야 불문하고 각 당은 대승적 자세로 개헌 논의에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을 경외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개헌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풀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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