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소멸시효 지난 빚 탕감, 모럴해저드 경계해야
상태바
[연합시론] 소멸시효 지난 빚 탕감, 모럴해저드 경계해야
  • 연합뉴스
  • 승인 2017.08.01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채권 25조7천억 원어치가 연말까지 소각된다. 이럴 경우 214만3천 명에 달하는 채무자들의 빚 기록이 금융 전산시스템에서 완전히 사라져 이들이 장기연체와 추심 족쇄에서 벗어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31일 금융 공공기관장, 금융권별 협회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처리방안을 발표했다. 부문별로 국민행복기금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에다 파산 면책 채권 등을 더해 총 5조6천억 원(73만1천 명)을 소각한다. 2013년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1억 원 이하 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자의 채무를 최고 50%(기초수급자는 70%)까지 감면하고, 감면된 채무도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하도록 해 준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공공기관은 총 16조1천억 원(50만 명)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한다. 이들 금융 공공기관의 채권 소각 시한은 8월 말이다. 대부업을 제외한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들도 연말까지 자율적으로 소멸시효 완성채권 약 4조 원(91만2천 명)을 소각할 예정이다. 이로써 공공 금융기관 소액 장기 채무 탕감에 한정됐던 문재인 대통령의 서민금융 강화 공약은 민간 금융회사로까지 확대됐다.

이번 결정은 그동안 금융업계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추심이나 매각을 금지해 왔지만 불법·편법적 추심이나 시효중단 조치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한 데 따른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상법상 소멸시효인 5년이 지난 금융채권으로 채무자는 합법적으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많은 금융회사가 법원의 지급명령 등을 통해 시효를 15년 또는 25년까지 연장해 관리해 왔다. 소멸시효가 완성돼도 채무자가 일부 빚을 갚으면 채무가 부활한다는 점을 악용, 금융기관들이 채무자에게 채무상환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이들이 일부 선납금만 납부하면 원금을 대폭 감면해 준다고 유혹해 소멸시효를 무력화하는 편법을 사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하면 채무가 부활할 가능성은 원천 차단된다. 금융위는 9월 1일부터 채무자가 연체채무의 소각 여부를 해당 기관의 조회시스템이나 신용정보원 소각채권 통합조회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간담회에서 "빚 권하는 폐습을 버리고 서민들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면서 "우선 금융 공공기관들이 모범을 만들고 민간 금융기관은 업권별 협회가 중심이 돼 자율적으로 채권을 소각하고 시효연장 관행도 개선해 달라"고 당부했다.

빚의 노예로 장기간 고통받는 채무자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의 책무로 볼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서민들의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을 내건 바 있고 이중 상당수가 실행됐다. 대신 원금 일부를 감면해 주고 이자를 낮춰주는 '채무 재조정' 방식이었다. 이번처럼 원금을 전액 없애주는 조치는 전례가 없다. 정부가 나서 빚을 전액 갚아줄 경우 결국 국민 혈세가 투입돼야 하고 채무자들에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채권 소각에 따른 금융기관의 손해는 결국 정부가 메워 줄 수밖에 없다. 빚진 사람들은 '버티면 정부가 나서 해결해 준다'는 잘못된 기대를 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나라 곳간에 부담으로 주지 않고,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자발적 상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쪽으로 부채 탕감 규모와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