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시선] 구세군 자선냄비 사랑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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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의 시선] 구세군 자선냄비 사랑의 행보
  • 연합뉴스
  • 승인 2017.12.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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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서대문정 일정목 구세군영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빈민들을 구제하고자 작 이십일 일부터 금월 말까지 자선 '남비'(자선과 慈善鍋)를 시내 요처요처에 걸어놓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기로 되었다는데 동 군영에서는 본영 옆에서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정오까지 오십 호 가량 몇 끼의 쌀을 무료분배하며 쌀만 가지고 밥을 지을 수 없는 가련한 이에게는 매일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에 국밥을 줄 터이라는 바 이 표는 매일 백 명 한하고 그 표를 구세군 육아원에서 나눠준다더라." (동아일보 1928. 12. 22. '구세군 주최 자선과 설치')

1928년 12월 15일. 한국구세군에 의해 처음으로 자선냄비가 서울 시내에 등장했다. 당시 한국구세군 사령관 박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명동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구세군에서는 무료로 쌀을 주거나 국밥을 나눠주었다. 이 사랑의 행보는 90여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 구세군 자선냄비 설치 보도 (동아일보 1928. 12. 22)

매년 겨울이 되면 훈훈하고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삼각대에 올려진 구세군의 빨간 냄비, 제복을 입은 구세군이 흔드는 사랑의 종소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게 한다.

자선냄비의 모금활동은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연말 거리를 지키며 우리의 기부문화를 이끌어왔다. 모금된 성금은 영세민, 이재민, 장애인 구호와 사회사업시설 원조 등에 쓰인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는 18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해안에서 선박이 좌초돼 승객 1천여 명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재난을 당한 이들과 도시 빈민을 위한 모금을 위해 한 구세군 사관이 부두로 나가 주방에서 수프를 끓일 때 쓰던 큰 쇠솥을 내걸었다. 쇠솥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이고 기금을 모았다. 얼마 후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돈이 마련됐다. 이것이 구세군 자선냄비의 시초이다.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10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해 모금활동에 나서고 있다.

1908년 서울에서 활동을 시작한 구세군은 초기부터 아동, 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호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1909년 첫 기부금 모금을 시작한 이래 1916년 여자실업관을 건립하고, 1918년부터 육아원과 빈민구제소를 운영했으며, 1919년 아동복지사업을 위해 서울후생학원(보육원)을 만들었다. 1922년 의료선교사업을 시작했고, 수재민 구호활동을 벌였다. 1925년에는 여성 빈민무료숙박소를 개설하고, 1926년 윤락여성을 위한 여자관, 미혼모시설을 열었다. 1930년 구세군 종합병원을 세웠고, 1936년부터 가출여성과 미혼모 보호시설을 운영했다.

그러나 1942년 전시체제라는 이유로 일제 당국에 의해 활동이 불허되고 이듬해 강제폐쇄 조치를 당했다. 해방 후 1947년 구세군 사업이 재개됐고 1953년 한국전쟁 피난민 구호사업을 개시했다. 1954년 서대문 무료급식소의 문을 열었고, 1955년 서울, 과천 등에 양로원을 세웠다. 2013년에는 자선냄비 모금사업을 전담하는 자선냄비본부를 출범시켰다.

▲ 1964년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내는 사람들

구세군은 1865년 감리교 윌리엄 부스 목사가 가난하고 교회가 적던 런던 동부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창설한 개신교단의 하나로, 오늘날 전 세계 128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창립 당시 산업혁명 후기의 영국에는 실업자와 빈민들이 넘쳐났고 사회문제가 심각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부스 목사는 빈민들을 위한 운동을 펼치게 됐다.

한국구세군은 1907년 부스 목사가 40일간의 일본 순회 선교 중 조선인 유학생들을 만나 이들이 조선사회의 개혁을 위해 조선에도 구세군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설립됐다. 1908년 10월 허가두(로버트 호가드) 사관과 부인 애니 존스 사관이 한국 땅을 밟았다. 초창기 헌신적 활동으로 1916년 이 부부가 조선을 떠날 때는 전국에 구세군 교회가 78개소, 사관이 87명, 교인이 4천800여 명으로 성장했다.

▲ 서울 명동에서 모녀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은 총 77억4천만 원이었다. 전년보다 5억1천만 원이 증가한 액수다. 경제가 어렵고 탄핵 정국으로 사회가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이웃을 향한 관심은 줄지 않았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거리 모금은 다소 줄었고, 기업 모금액은 늘어났다.

한국구세군은 지난 1일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올해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409곳에서 약 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오는 31일까지 거리 모금을 전개한다.

구세군뿐 아니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11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을 하고 연말연시 이웃돕기 행사인 '희망 2018 나눔 캠페인'에 들어갔다. 올해 사랑의 온도탑은 '사람 인(人)'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나눔의 주인공이란 의미이다. 이번 캠페인은 내년 1월 31일까지 73일간 전국 17개 시·도 모금회 지회에서 일제히 진행된다. 캠페인 모금 목표액은 3천994억 원으로 지난해 모금액 3천915억 원보다 2% 높은 액수다. 목표액의 1%가 모금될 때마다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1도씩 올라간다. 지난해는 108.1도로 100도를 훌쩍 넘었다.

이들 외에도 여러 민간기관과 사회단체 등 많은 곳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광화문광장 사랑의 온도탑

해마다 12월이 되면 가장 낮은 곳에도 기쁨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따스한 빨간색 냄비와 그 곁에서 함께하는 종소리, 부모를 따라 냄비에 돈을 넣는 아이들의 고사리손. 이러한 모습은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한해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나눔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자선냄비 모금활동이 연말에 집중되는 것은 소외된 이웃들에게 가장 악조건인 겨울철, 이웃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보다 힘든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을 나누고 자기 자신도 격려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이 추운 겨울철 사랑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나눔은 겨울에만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 불황과 사회문제로 모두가 어려운 지금, 사회적 약자를 향한 꾸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행동을 통해 도움을 전달하여 따뜻한 나눔 문화를 형성해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일부 기부단체의 부패나 기부금 유용 사건으로 자신이 낸 기부금이 투명하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감이 나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

이 땅에 자선냄비가 등장한 지 내년이면 90년이 된다. 그동안 작은 손길들이 모여 자선냄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저 연말이면 등장하는 연례행사로 생각하지 말고 이웃 사랑의 의미를 깊이 새겨볼 때이다. (글로벌코리아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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