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힘 실어주고 야당에 회초리 든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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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 힘 실어주고 야당에 회초리 든 민심
  • 연합뉴스
  • 승인 2018.06.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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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여당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야당의 참패이다. 여론조사 추이로 여당의 승리는 일찍이 관측됐지만,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니 그 격차는 예상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14일 오전 0시 30분 현재 개표 결과가 그대로 굳어지면 17개 시·도지사 중 여당인 민주당이 14곳을 승리,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자유한국당은 텃밭인 대구와 경북 불과 2곳을 사수하는 데 그치고, 제주에서 무소속 당선자 1명을 내게 된다.

1995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부활 이래 특정 정당이 가장 많은 광역단체장을 탄생시킨 기록으로, 여당의 완벽한 승리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당시 16개 시·도지사 중 12곳을 차지했던 게 그동안 가장 압도적인 차이로 승부가 갈린 지방선거였다.

영남 지역의 민심 변화는 극적이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던 부산과 울산, 경남에서 민주당이 시·도지사를 차지하는 것은 지역주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던 영남 지역의 정치지형 변화를 나타낸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계열 정당이 지원하는 범야권 단일 후보가 경남도지사로 당선된 기록이 있지만, 무소속 후보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이번에 민주당 간판을 내건 후보가 모두 당선됨으로써 이른바 '부·울·경' 지역을 특정 정당의 안방이라고 부르던 시대는 종막을 고했다.

지방선거는 지방 행정을 책임지는 공동체 일꾼을 뽑는 선거지만 국정과 여야 중앙정치의 책임을 묻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남짓 지난 시점에 치러졌지만, 야당이 주장한 '정권 심판론'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민심과 '촛불 혁명'의 파장이 여전히 이어져 보수 재건을 호소한 야당에 채찍을 휘둘렀다.

자유한국당 참패는 대통령 탄핵사태를 초래한 정당으로서 자성하지 않고, 게다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와 냉전 해빙 흐름 속에서 "김정은과 남쪽 주사파의 숨은 합의", "위장 평화 쇼"라며 과거 색깔론 프레임으로 맞섰고, '샤이 보수'의 결집에만 기댄 채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대응하는 패착을 거듭했다. 견제 야당으로서 민생과 경제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지도부의 막말도 악재였다. 특히 보수 혁신을 부르짖었지만, 구호만 내걸었을 뿐 새로운 보수의 내실을 채워가는 노력은 소홀히 함으로써 전통적 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지방선거 압승을 계기로 국정의 추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여당의 승리는 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에 힘입은 바 크다. 과거 정부의 적폐와 구습 청산을 바탕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변화와 개혁 노선, 전쟁위기설까지 치닫던 한반도 정세를 남북, 북미 연쇄 정상회담 판으로 바꾼 외교·안보 분야의 성과 등은 지방선거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흐름은 정권을 심판하기보다는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쏠리게 했다.

앞으로 2020년 총선까지 2년 가까이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은 국정에 온전히 전념할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지방 권력도 차지함으로써 말단 행정에까지 국정을 스며들게 할 우호적 환경까지 구축했다. 12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해 국회 내 의석도 늘렸다. 유권자들이 큰 승리를 안겨줬지만, 막중한 책임도 함께 부여했음을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 승리감에 도취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여전히 민생현장은 고달프고,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해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경제 정책은 민심으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궤멸이라고 할 정도의 성적표를 받아든 야당은 패배의 후폭풍에 휘말릴 것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당 존립에 근본적 문제가 제기될 만큼의 충격파에 휩싸일 전망이다. 대다수 광역·기초 단위 선거에서 지난 대선 때 후보의 득표율보다 떨어졌고, 선거 기간 당 대표의 지원 유세까지 후보들이 꺼리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는 등 당의 응집력도 이완됐다. 선거 참패로 당 지도부 개편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간판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선과 정책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육참골단'의 자세로 희생하고 쇄신할 때 새로운 보수정당의 길이 열릴 것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광역단체장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고, 특히 바른미래당은 간판으로 내세운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3위로 패퇴해 외연 확장에 실패함으로써 당의 재정비는 불가피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재편과 맞물려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바른미래당은 중도·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새 정치의 중심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모호한 정체성으로 지지층을 다지는 데 실패했다. '당대 당' 통합까지 거론된 안 후보와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의 단일화 논란은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 평화당은 선거 기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제3당의 정치실험이 한계에 봉착했다. 선거 결과로 드러났듯이 대안 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이슈도 없고, 정책도 없는 선거로 무관심 속에 캠페인이 전개됐음에도 투표율은 60.2%로 23년 만에 60%를 돌파하며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정당과 후보들의 퇴행적인 모습에도 유권자들은 표로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주권 의식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여야 정당 모두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한다. 민심은 여당에 힘을 실어줬지만 오만하면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야당은 참패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회초리를 든 이유를 냉철하게 살펴보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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