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자사고 정책 전환이 교육현장 혼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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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자사고 정책 전환이 교육현장 혼란 불렀다
  • 연합뉴스
  • 승인 2018.06.2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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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중요성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 백년대계(百年大計)다. 교육은 미래의 인재를 기르기 위한 중차대한 일이므로 백 년 앞까지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근시안적 교육행정을 경계한 이 말은 귀에 못이 박일 정도다. 그러나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교육 행정가들은 이 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하루아침에 정책이 뒤바뀌어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케 하는 일이 잦다. 대학과 고교입시에 관련된 제도나 정책이 특히 그렇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이 일반고에 이중으로 지원하지 못하도록 만든 법령 개정도 그중 하나다. 개정된 법령은 교육현장에서 펼쳐보기도 전에 다시 접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자사고 지망생들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막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자사고 이사장들과 자사고 지망생·학부모들은 지난 2월 이 조항이 헌법상 평등권과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함께 냈다. 헌재의 제동에 따라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 금지' 법령은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시행되지 못하게 됐다.

고교입시는 일정에 따라 8~11월 학생을 뽑는 전기와 12월에 뽑는 후기로 나뉜다. 과학고·자사고·외고·국제고는 전기에, 일반고는 후기에 입시를 치러 왔다. 교육부는 작년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과학고를 제외한 모든 학교가 후기에 신입생을 같이 뽑도록 입학전형을 일원화했다. 또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는 일반고에 이중 지원하지 못하도록 했다. 개정 법령 아래에서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가 불합격할 경우 본인이 원치 않는 일반고에 강제로 추가 배정될 수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입학전형을 일원화한 것은 자사고와 외고가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해 고교서열화와 일반고 침체를 심화시킨다고 봤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이 나오자 교육부는 개정 시행령대로 고교입시를 후기로 일원화하되 가처분이 인용된 이중지원 금지 조항에 대해서는 교육청과 적절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교육부는 헌재 결정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사고·외고에 대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 헌재가 가처분 인용에 이어 본안 심판에서도 헌법소원 신청인들의 주장대로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 금지' 법령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헌재의 재판관 9명이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을 그 이유로 든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 6·13선거에서 14곳을 휩쓴 진보교육감도 모두 자사고·외고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 금지'는 이 공약을 염두에 둔 조치다. 교육 당국은 대선과 지방선거 공약이라고 해서 헌재 결정의 후속대책으로 '땜질식 처방'을 내놓고, 자사고·외고 폐지를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자사고·외고에 대한 정책 자체부터 근본적인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관련 법령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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