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의 백두산 등정, 평화의 제도화로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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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의 백두산 등정, 평화의 제도화로 이어지길
  • 연합뉴스
  • 승인 2018.09.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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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한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정상을 함께 올랐다. 2박 3일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간 두 정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일정을 같이 했고 예상치 못한 백두산 동반 등정은 훨씬 두터워진 정상 간 신뢰를 상징하는 화룡점정이었다.

'9월 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한 것도 이번 회담의 큰 성과이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미래를 같이 바라보는 두 정상의 굳은 의지와 연대를 확인한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번 회담의 소중한 결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 지도자로서는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왔던 김 위원장에 대해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됐다"고 말했고, 화답하듯이 김 위원장은 이번에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에 대해 "세 차례 만났는데 제 감정을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말 가까워졌구나' 하는 것"이라고 친밀감을 드러냈다. 정상 간의 신뢰는 국가 간 외교에서 가장 큰 자산이다. 쌍방 국익은 충돌할 수 있지만, 그 오해를 해소하고 공감대의 폭을 넓혀 상호 이익을 확대해 나가는 가장 큰 지렛대는 격의 없는 정상 간 소통이다. 하물며 반세기 넘도록 적대의 시간을 보낸 분단국의 최고 지도자 간 신뢰와 소통은 평화를 제도화하는 강력한 힘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주목할 것은 두 정상의 신뢰와 소통이 상층부 외교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19일 5ㆍ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를 관람한 뒤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했다. 분단 이후 우리 지도자가 평양 한복판에서 북한 주민을 향해 대중 연설을 한 것은 전례가 없다. 2000년, 2007년 평양 정상회담 때도 없었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파격적 사건이다. 북한 인민을 향한 공공외교의 장을 김 위원장이 깔아준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은 카퍼레이드하며 평양 주민 속으로 들어갔고, 평양 주민을 향해 90도 인사를 하고 다가가 손을 맞잡았다. 이 광경은 관영 TV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남북 간에 이데올로기적 선전이나 체제 경쟁은 옛말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 장면들이다.

이런 흐름이 이번 회담에서 약속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성사를 통해 이어져야 한다. 분단 체제에서 북한 지도자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지난 1991년 채택된 남북 기본합의서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통해 천명된 상호 체제 인정과 공존ㆍ공영의 정신이 비로소 이행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하고도 이를 실천하지 못한 것은 평양처럼 통제되지 못하는 환경에서 경호 문제를 포함, 남쪽 체제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서울 답방을 결단한 것은 서로 다른 체제에 대한 인정이자, 극복할 부분은 극복해야 남북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공존ㆍ공영의 정신은 이번 정상회담 기간 가장 많이 사용된 평화와 번영이라는 단어로 집약됐다. 문 대통령은 남측 정상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 청사를 방문,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으로 겨레의 마음은 하나!'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도 '9월 평양공동선언'을 평가하며 "나와 문 대통령은 북남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합의문들과 대화들은 '핵과 전쟁이 없는 한반도' 구축을 통한 평화,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 즉 공존·공영의 시대를 활짝 여는 행동들에 일관되게 초점이 맞춰졌다. 과거 6ㆍ15, 10ㆍ4 정상선언보다 실천적 성격이 더욱 가미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회담의 결과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이정표는 어떤 곳으로 향하는 거리와 방향을 알리는 표지이자 기준을 의미한다. 이제 두 정상은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정표를 따라 행동하는 일만 남았다.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은 비핵화 협상의 타결이다. 비핵화 이행의 첫 단추가 잘 꿰져야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위한 순조로운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4ㆍ27 판문점 정상회담 때 도보다리 산책 장면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두 정상의 이번 백두산 등정은 남과 북이 시원(始原)을 같이 한 한민족 한겨레임을 선언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문 대통령이 천지에 손을 담그고 평화롭게 산책할 수 있는 상황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고, 대통령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북한 땅을 거쳐 백두산 관광을 자유롭게 하는 날을 앞당기는 것이 남과 북의 임무이다. 평화의 제도화를 돌이킬 수 없게 하는 걸음으로 백두산 등정이 훗날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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