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산지 르포] 가격하락에 태풍까지…'엎친데 덮친' 나주배 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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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산지 르포] 가격하락에 태풍까지…'엎친데 덮친' 나주배 農心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9.09.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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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저온으로 착과율 반토막, 기형 과실 속출 가격 하락 불가피
태풍 북상 소식에 "농사 길목마다 날씨가 고춧가루 뿌려" 한숨
추석 출하 앞둔 나주배 선별 작업 [연합뉴스 사진]
추석 출하 앞둔 나주배 선별 작업 [연합뉴스 사진]

"이놈은 옆구리에 점이 있잖아요? 울퉁불퉁 짱구처럼 생긴 이놈도 제사상에 오르긴 힘들어요."

한가위를 열흘 앞둔 3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의 햇배 선별장에서 만난 농민 정현기(63) 씨는 2등급 기준 이하 '못난이'를 골라내며 이런저런 근심을 드러냈다.

정씨는 "올해 농사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길목마다 날씨가 고춧가루를 뿌렸다"고 푸념했다.

4월에 서리와 우박을 잇달아 맞으면서 정씨 과수원에서는 배꽃이 좀체 피어나지 않았다.

가지에 열매가 열리는 비율인 착과율이 작년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봄에 내린 서리와 우박 탓에 발육이 부진한 배 [연합뉴스 사진]
봄에 내린 서리와 우박 탓에 발육이 부진한 배 [연합뉴스 사진]

열매가 맺혀도 저온 피해 탓에 발육이 부진하고 모양은 제멋대로인 기형 과(果)가 속출했다.

우리나라 최대 배 산지인 나주에는 올해 개화기를 1주일여 앞두고 아침 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꽃샘추위가 닥쳤다.

나주시농업기술센터가 전수조사해보니 전체 재배면적 1천990㏊ 가운데 86%에 달하는 1천716㏊에서 저온 피해 현상이 발생했다.

정씨는 가뭄이나 폭염 등 별 탈 없이 한여름을 넘기면서 추석 출하기 때 만회를 기대했다.

이번에는 장마처럼 긴 비에 우리나라를 향해 오는 태풍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왔다.

그나마 날씨 예보를 믿고 지난주 서둘러 수확을 시작한 덕분에 정씨 과수원에서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선별 작업이라도 시작됐다.

연일 비가 내려 미뤄진 배 수확 [연합뉴스 사진]
연일 비가 내려 미뤄진 배 수확 [연합뉴스 사진]

배가 더 영글기를 기다리며 이번 주까지 지켜본 이웃 작목반원은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신세 한탄만 늘어놨다.

수확을 서둘렀어도 배가 절반가량 나무에 남아있어 정씨는 지난해 20명 넘게 투입했던 선별 작업에 올해는 11명만 동원했다.

작업량이나 속도와 비교해 11명도 많아 보였으나 집집이 사정을 아는지라 정씨는 인원을 더 줄이지 못했다.

새참이 도착하자 일손을 잠시 멈춘 한 아낙은 "어렵다는 소식 말고 좋은 뉴스 좀 내달라"며 정성껏 깎은 배 한 조각을 내밀었다.

모양은 신통치 않아도 과즙을 한껏 머금은 맛이 시원하고 달았다.

정씨는 "며칠만 햇볕을 더 쬐었다면 지금보다 색깔이 좋고 상품 가치도 높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나주배 선별 작업 [연합뉴스 사진]
나주배 선별 작업 [연합뉴스 사진]

심술궂은 날씨는 선별을 마치고 전국 각지 농산물공판장을 향해 떠났어야 할 배의 발길마저 붙들어 맸다.

연일 내리는 비 탓에 배송이 원활하지 않아 포장을 마친 상자가 지게차 화물 단위로 선별장 한편을 차지했다.

정씨는 "특품 기준으로 7.5㎏들이 한 상자에 4만5천원은 넘게 받아야 하는데 3만 4천원∼5천원 정도 손에 쥐는 상황"이라며 "포장 비용만 상자당 6천원꼴로 들어가고 있는데 아직 장이 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추석이 이른 만큼 연휴가 지나고 나서도 때를 기다려볼 여지는 있다.

변수는 하루하루 다가오는 제13호 태풍 '링링'이다.

작황 부진과 궂은 날씨 탓에 저장창고 한산 [연합뉴스 사진]
작황 부진과 궂은 날씨 탓에 저장창고 한산 [연합뉴스 사진]

강풍에 나무가 기둥째 들썩이면 제아무리 손으로 잡아당겨도 꿈쩍 않는 배도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정씨가 속한 작목반원 다수가 '가을장마'에 미룬 추석 출하보다 태풍에 긴장하고 있다.

나주에서는 2천227 농가가 전국 배 재배면적의 19.3%인 1천990㏊에서 신고·원황·추황·황금배 등을 재배한다.

나주시 관계자는 "추석에 다 팔지 않은 배는 보관했다가 설에 출하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날씨 상황이 좋지 않다"며 "작황 부진에 이어 태풍 영향으로 농민들 피해가 커지지 않을지 걱정이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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