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찾은 어린이들 "아직 살아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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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찾은 어린이들 "아직 살아있을 거예요"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4.05.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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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메시지 적고 노란 리본 매달며 어른들과 슬픔 나눠
세월호 참사 슬프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어린이날 보내

▲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20일째인 5일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어린이날인 5일 목포에서 가족들과 함께 팽목항을 찾은 초등학교 2학년 최수혁(8)군은 눈이 또랑또랑했다. 최군은 먼 발치로 바다를 바라보는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성큼성큼 부둣가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가슴앞에 모았다.

최군은 아침마다 뉴스를 틀고 구조 소식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어머니 박현주(39)씨가 더딘 구조 소식에 지쳐 다른 채널로 돌리자고 하면 "그러면 안돼요 엄마"라고 막아서기도 했다.

최군은 "형 누나들이 물 속에서 아직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한다"며 "빨리 돌아와 같이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바람을 나타냈다.

세월호 사고 20일째인 5일, 황금연휴이자 어린이날을 맞아 팽목항에는 전과 달리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 전체가 온 경우까지 다양했다.

"저기 보트 온다. 아빠 무슨 일이지?". 장동훈(7)군은 고사리 같은 손을 들어 팽목항을 향해 들어오는 배를 가리켰다.

옆에 있던 장군의 누나 장윤아(9)양이 '보트'가 아니라 '배'라고 설명해줬다.

TV에서만 보던 '노란리본'을 직접 달기 위해 왔다는 장양은 '언니 오빠들 편히 잠드소서'라고 노란 리본에 추모의 글을 적었다.

장양은 놀이공원에 놀러간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팽목항에 오고나서 그 마음이 사라졌다. 노란 리본에 적힌 많은 메시지를 읽으며 엄마 아빠, 주변 가족을 더 돌아보게 됐다.

이혜준(11)양은 부둣가에서 내려다본 푸른 바다가 참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양은 "언니 오빠들을 삼킨 바다를 보며 나도 그렇게 되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슬퍼졌다"고 말했다.

이양은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려고 직접 팽목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팽목항 가족대책본부 앞 게시판에 '내가 기도할게 빨리와'라고 간절함을 담은 글을 붙였다.

거제도에서 오전 9시에 출발했다는 서모(46·여)씨는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 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팽목항에서 서망해수욕장까지 조용히 걸었다. 서망해수욕장은 2008년 8월부터 해수욕장 지정이 해제돼 이젠 정식 해수욕장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이날 팽목항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도 파랬고 바다도 파랬다. 갈매기떼는 잔잔하게 파도 치는 바다 위에 앉았다 날아오르길 반복했다.

서씨는 느린 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해수욕장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서망 해수욕장 백사장에는 "00아 빨리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부르짖음이 파도소리에 섞여 들리는 듯 했다.

서씨는 엄마로서 집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직접 팽목항을 찾았다. 그는 "해변가의 글씨를 보니 아이를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아프다"며 "하루빨리 아이들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에서 온 하형진(15)양은 부둣가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을 꼼꼼히 읽었다. '00야, 오늘 엄마 생일인거 알지? 기다릴게'라고 적힌 메시지 앞에서는 마음이 아파 울컥했다.

하양은 "이번 어린이날은 잊지 못할 것"이라며 "조용하게 생각하면서 어린이날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이날에 친구들과 놀러가는 것 대신 팽목항을 찾은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그들은 눈물과 아픔이 가득한 팽목항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방문이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부모들은 팽목항을 찾은 아이들이 세월호 사고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엄마 아빠의 소중함을 느끼며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됐을 것라고 입을 모았다. 팽목항을 찾은 어린이들은 그렇게 차분하고 경건하게 어린이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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