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선관위 '책임통감'이 아니라 응당 책임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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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선관위 '책임통감'이 아니라 응당 책임질 문제다
  • 연합뉴스
  • 승인 2022.03.0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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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과 관련한 긴급위원회 전원회의를 갖고 있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과 관련한 긴급위원회 전원회의를 갖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전투표 부실 관리, 이른바 '소쿠리 선거' 논란은 결코 일과성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수개월 전부터 코로나19 확산의 심각성을 감안해 확진ㆍ격리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준비 필요성이 각계에서 제기됐는데도 선진 민주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선거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측은 국회의 준비 상황 질의 때마다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여러 번 시뮬레이션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표소가 넉넉지 않아 확진ㆍ격리자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가 하면, 감염 우려로 참관인이 참관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기표된 투표용지를 투표자에게 주는가 하면, 투표용지를 쇼핑백이나 종이박스,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참관인도 없이 투표함으로 옮겨지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돕기는커녕 방해했을 뿐 아니라 공정성과 비밀성을 훼손한 졸속 관리였다. 사전투표 선거사무원으로 일했다는 한 지방직 공무원이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유권자가 스스로의 투표 결과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원칙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것"이라며 "이런 (선관위) 지시를 확인한 순간 이게 말이 되냐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중앙선관위는 논란이 일자 7일 긴급전원회의에서 9일 본선거에서는 '전달식 투표' 대신 일반 유권자와 동일한 방법으로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투입토록 하고 오후 6시 이후 일반 유권자가 모두 투표장에서 퇴장한 뒤에 확진자 투표를 하도록 해 동선을 분리하겠다고 했다. 이 지침은 과연 혼선의 소지가 없을지도 걱정이지만, 기왕에 문제가 된 유권자 권리침해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미 기표된 채 배부된 투표지의 유효 처리 여부, 또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 기다리다 못해 되돌아간 유권자 권리침해 문제 등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5년에 한 번 열리는 대선,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총선과 지방선거는 중앙선관위의 핵심 사무다. 그걸 제대로 하라고 선관위원장은 총리급,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은 장관급으로 예우하고, 1년에 7천5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중앙선관위에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뻔히 예고됐던 상황조차 대응하지 못하고 선거의 기본 원칙마저 무시한 지침으로 선거를 관리해 놓고선 문제가 터지자 침묵하다가 6일 처음 발표한 입장이라는 것이 "법과 규정을 따랐다. 부정 소지는 없다"는 것이었다. 여당과 청와대까지 부실 대응을 질타하자 뒤늦게 만 하루 동안 세 번에 걸쳐 사과 입장을 발표했지만, "사전투표 규모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기변명은 그대로였다. 사전투표 도입 이후 매번 투표율이 기록적으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그걸 예측하지 못한 것을 핑계라고 내놓은 것인지, 아니면 확진자가 폭증할 것이라는 예측을 중앙선관위만 피해간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고는 결국 인력ㆍ시설 부족 탓을 하고 있다. 무책임도 이 정도면 불감당이다. 불과 두어 달 전 조해주 상임위원 임기를 연장하려다 선관위 내부 반발로 무산되면서 선관위의 중립성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그런 선관위라면 더 조심하고 경계해 이번 선거를 철저히 관리했어야 했다.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책임을 통감하며,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책임 통감이라는 원론적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하고, 자칫 선거 결과에 따라 불복의 소지까지 제공했다는 점에서 선관위의 이번 부실 관리는 명백히 그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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