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돈은 다 은행으로…정기예금·채권발행 모두 '역대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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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돈은 다 은행으로…정기예금·채권발행 모두 '역대 최대'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2.10.2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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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0일만에 정기예금 36조원↑ 기록 또 경신…9월 은행채 26조원도 최대
'블랙홀 은행'에 회사채·2금융권 돈줄 막혀…숨통 틔울 열쇠도 은행에
은행권 "LCR 유예로는 부족…대출 늘릴 테니 예대율 등 기준 낮춰달라"

채권 시장을 중심으로 돈이 잘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자금 경색의 진원지로 은행이 꼽힌다.

기준금리 인상과 유동성 규제 비율 충족, 기업대출 자금 조달 수요 등에 따라 최근 은행들은 일제히 예·적금 금리를 크게 올리고 은행채를 대거 발행하면서 시중 자금과 채권시장 자금을 사상 최대 규모로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대로 은행 예·적금 외 회사채나 증권사, 저축은행을 비롯한 2금융권 등으로 가는 돈 길은 막혔다.

결국 자금 흐름을 되살릴 열쇠도 은행권이 쥐고 있는데, 은행들은 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직접 자금 조달(채권 발행 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2금융권에 대출(간접 자금 조달)을 더 해줄 테니 유동성 비율 등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사라진 돈은 모두 은행으로…정기예금·채권발행 모두 '역대 최대'(서울=연합뉴스)
사라진 돈은 모두 은행으로…정기예금·채권발행 모두 '역대 최대'
(사진=연합뉴스)

◇ 금리 5% 넘자 은행 정기예금에 1년새 141.5조원 몰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0일 현재 정기예금 잔액은 모두 796조4천514억원으로 9월 말(760조5천44억 원)보다 35조9천470억원이나 늘었다.

아직 월말까지 열흘이나 남았지만, 이미 월 증가 폭(35조9천470억원)이 지난달(30조6천838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한은 통계에서 앞서 9월 5대 은행을 포함한 예금은행의 정기예금은 32조5천억원이나 급증했다.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한달 사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5대 은행의 추세로 미뤄, 9월에 이어 10월에도 전체 은행권 정기예금의 증가 폭은 다시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 확실시된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불어난 5대 은행 정기예금만 141조5천155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은행 정기예금에 시중 자금이 몰려드는 것은, 무엇보다 7·10월 두 번의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포함한 빠른 기준금리 인상이 예금 금리에 반영되면서 금리가 5%를 넘는 상품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은 지난 20일 15개 정기예금, 23개 적립식예금(적금) 상품의 금리를 인상했는데, 취약계층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KB국민행복적금의 최고 금리는 1년 만기 기준 연 5.75%로, KB반려행복적금 최고 금리는 3년 만기 기준 연 5.0%까지 올랐다.

◇ 저축은행 '패닉'…급한 불 끄러 6%대 올렸다가 하루 만에 낮추기도

은행 예금 금리 급등의 영향으로 당장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는 곳은 저축은행이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도 최근 1주일여 사이 부랴부랴 예·적금 금리를 6%대까지 높였고, 다올저축은행의 경우 20일 예금 금리를 최고 6.5%까지 올렸다가 자금 조달 목표액이 하루 만에 달성되자 바로 다음 날인 21일 금리를 다시 5.2%로 낮추는 촌극까지 벌였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금 은행들이 비상식적으로 예금 금리를 인상하고 있고, 그 영향으로 7월 이후 저축은행 수신이 거의 늘지 않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은행보다 저축은행 예금 금리가 1%포인트(p) 정도 높아야 하는데, 은행이 5%대를 찍으니 우리(저축은행)는 6%를 넘길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기업대출 수요·유동성 비율 관리에 은행채 쏟아져…회사채 더 위축

이처럼 예금이 급증하는 와중에 은행들은 추가 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채권(은행채)까지 팔고 있다.

연합인포맥스·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9월에만 모두 25조8천800억원어치의 은행채가 발행됐다. 월별 은행채 발행액으로는 역대 최대 기록이다.

10월 들어서도 이미 20일 사이 16조4천700억원어치의 은행채가 또 발행됐다.

이에 따라 전체 발행 채권 대비 은행채의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이달 20일 현재 43.3%까지 치솟았다.

올해 3월 10.4%에서 불과 6개월 사이 30%포인트(p) 이상 뛴 것으로, 대표적 우량 채권인 은행채가 채권 발행 시장의 거의 절반을 장악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인 일반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더 줄고, 금리는 더 뛰며, 발행 유찰이 잇따르면서 채권 시장은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최근 은행이 채권 발행을 늘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채권을 통한 직접 자금 조달에 실패한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아무리 예금 재원이 많다고 해도 은행 입장에서는 추가 자금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정기예금과 달리 요구불·수시입출식 등 저원가성(낮은 금리) 예금에서는 계속 돈이 빠져나가는 점도 걱정거리다.

더구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에 대응한 측면도 있다. LCR은 향후 30일간 순현금유출액 대비 현금·국공채 등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로,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 등 단기간에 급격히 예금 등이 빠져나갈 경우를 대비해 충분한 유동성을 갖추라는 취지의 규제다.

금융당국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 직후 당초 100%였던 은행의 LCR 비율을 85%로 낮춰줬는데, 지난 7월부터 순차적 정상화 절차가 시작돼 4분기 기준이 92.5%까지 올라가자 은행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채권 발행을 늘린 것이다.

◇ "예대율·LCR에서 금융중개지원대출·증안펀드 등 빼달라"

지난 20일 금융당국이 주요 은행의 자금 담당 임원들을 불러 자금 조달 상황 등을 점검한 것도 이처럼 시중 자금이 모두 은행으로 집중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돈이 몰리는 은행의 자금 정책 변화가 결국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사태까지 겹쳐 더 경색된 자금 시장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국이 LCR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연장한 것도, 은행들이 기준 완화로 여유가 생긴 유동성만큼 일시적 자금 경색에 시달리는 우량 기업이나 2금융권 등에 대한 대출을 늘려 돈줄에 숨통을 틔워달라는 뜻이다.

아울러 은행이 높아진 LCR을 맞추기 위해 발행하던 은행채를 줄이면, 다른 회사채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 발행이 수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자금 공급에 나서려면 LCR 정상화 유예만으로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에서는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 규제 기준도 낮춰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회의에서도 현행 기준대로라면 가계대출 잔액의 115% 이상의 예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비율을 100%로 하향 조정해달라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한은으로부터 은행이 빌려서 대출해주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의 경우, 은행이 직접 조달할 필요가 없는 자금인 만큼 예대율 산정 과정에서 아예 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LCR과 관련된 추가 요청도 있다.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에 은행이 참여할 때 출자 약정액의 10%는 현금 유출로 간주하는데, 정부와 금융시장을 지원하는 취지인 만큼 현금 유출로 보지 말고 LCR 계산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은행들은 현재 한은으로부터 대출할 때 국채·통화안정화증권·정부보증채 등 국공채만을 담보(적격담보증권)로 제공하는데, 이 적격담보증권에 은행채도 포함해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관철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보유한 은행채를 대출 담보로 활용할 수 있어 그만큼 자금 여력이 늘고 조달 압박을 덜 받게 된다. 한은은 앞서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은행채 등도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했다가 지난해 3월 말 한시적 조치를 종료한 바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20일 회의에서 유동성 비율 규제 예외 등을 포함해 은행의 적극적 자금 공급을 위해 필요한 여러 조치들에 대한 건의가 있었다"며 "은행권은 이들 건의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해 이번 주 초 당국에 제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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