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칼럼] 정체성 잃은 충장 월드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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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칼럼] 정체성 잃은 충장 월드페스티벌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22.10.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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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추억의 광주 충장 월드 페스티벌 퍼레이드
제19회 추억의 광주 충장 월드 페스티벌 퍼레이드

광주 금남로는 예부터 호남 정치 1번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충장로는 호남지역 최대 중심 상권으로 영광을 누렸던 곳이다. 하지만 요즘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는 을씨년스러운 적막한 분위기다. 상가 건물 곳곳에는 임대 광고 현수막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충장로·금남로 상권이 구도심 공동화와 인구 감소로 유동인구가 줄면서 침체의 길을 걷던 중 코로나19까지 이어지면서 상가 공실이 증가하는 등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충장로·금남로를 찾는 사람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거대 프렌차이즈 업체나 노포마저도 침체한 충장·금남로 상권을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불패신화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마저도 10년 만에 광주 충장로점을 철수했고, 1945년 문을 연 노포인 중화요리전문점 '왕자관'과 1983년 개업한 만남의 장소로 꼽히는 돈까스 전문점 '유생촌' 역시 충장로 본점은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코로나19 등 각종 위기를 꿋꿋하게 버텨온 충장·금남로 일대 상인들은 "그래도 희망은 있다"며 다시 한번 옛 영광을 기대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주일 전 광주 대표축제인 '제19회 추억의 광주 충장 월드 페스티벌'이 닷새 간의 여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이번 충장 월드 페스티벌 기간 경찰 추산 60만여 명의 방문객이 몰렸다고 한다. 지난해 21만여 명이 방문한 데 비해 3배 가까이 방문객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는 것. 이번 축제는 주제를 '글로벌'로 확장해 세계 음악과 음식, 문화·예술을 아우르고 다양한 체험 및 전시 행사를 운영해 7080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MZ세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세계를 향한 이번 '글로벌 축제'는 기존 '7080', '추억'을 넘어 '글로벌' 축제로서 외국인들까지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를 확장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제1회 버스커즈 월드컵 IN 광주'를 함께 진행해 거리 곳곳에서 세계 음악이 울려 퍼진 것도 새롭다는 견해다.

보통 축제는 크게 보면 공동체 회복을 통한 정체성 제고,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정체성, 거기에 일탈성과 유희성,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로 통했다고 자화자찬한 올해 열아홉 번째를 맞은 충장 월드페스티벌은 남의 잔치였다. 지난해까지 '추억의 충장축제'는 7080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서로 나누고 베푸는 우리들의 잔치였다. 하지만 무늬만 추억을 내세운 올해 충장 월드페스티벌은 29억 원을 쏟아부은 경제성도 정체성도 미래성도 담보하지 못한 행사였다.

지금은 글로벌시대다. 축제는 세계화를 외치며 영역 확장을 한 것은 잘했지만 지역 예술인과 상인들은 남의 잔치에 팔짱 끼고 구경만 한 꼴이 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였는지. 이번 충장 월드페스티벌은 정체성을 잃고 세계를 지향한 그냥 즐기고 남는 것 없는 쓰레기만 남긴 축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광주의 대표 먹거리와 관광지를 연계해 관광객이 다시 찾을 수 있게 유인하는 마술은 결코 없었다. 5·18민주광장 주무대와 아시아문화전당 하늘마당에 집중된 축제장의 변방은 어둠 속이었다. 볼거리와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사직공원과 양림마을 등을 연계시킨 행사도 없었다. 축제를 즐기고 그 이외의 것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외지인들은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어서 전통맛집 등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광주공원 근처의 한 식당 주인은 5·18민주광장 주변으로 모두 몰리니 오히려 한산해 손님 기다리다 지쳤다고 했다.

광주는 남도의 전통문화를 품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남도를 대표할 수 있는 국악 등의 장르는 찾아볼 수 없었다. 29억 예산 중에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얼마나 쓰였는지는 아직 정산이 되지 않았다고 하니 알 수 없으나 지역 문화·예술인 단체와 개인 등 300여 개가 조금 넘는 대상에게 평균 50여만원씩 지급했다고 하니 답이 나온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터부시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충장축제의 세계화, 킬러 콘텐츠 제1회 버스커즈 월드컵 in 광주 등 버무린 축제를 내세운 충장 월드페스티벌이 흥행에 한몫은 했을지 몰라도 정체성은 잃고, 반짝 흥행만 있고 막을 내린 거리에는 낙엽만 뒹군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일상이 축제가 되는 '글로벌 꿀잼도시' 광주를 위해 지역 축제와 관광산업 활성화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에는 없는 소설같은 이야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주 동구가 중소벤처기업부의 '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선정돼 올해부터 2026년까지 100억 원을 들여 충장로와 금남·충금 지하상가를 융합하고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상권 조성에 나선 점이다. 지금처럼 구도심 공동화가 더 가속화되면 도시의 불균형으로 결국 광주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광주시가 상권 재생과 활성화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접근성 향상을 위해 상인들의 요구도 들어줘야 한다. '호남 쇼핑 1번지'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직공원, 양림마을, 전통시장 등과 연계한 관광 코스 개발과 특화 상품의 개발에도 힘을 써야 한다. 강운태 시장 때부터 나온 얘기다. 충장 월드페스티벌도 판을 크게 벌이려고 하지 말고 정체성을 살려 상권을 되살리는 한몫을 마땅히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한다. 시민의 세금 29억 함부로 쓰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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