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칼럼] 이태원 참사 한 달, 대한민국 갈 곳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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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칼럼] 이태원 참사 한 달, 대한민국 갈 곳을 잃어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22.11.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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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열하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2022.11.22 [공동취재]
오열하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2022.11.22 [공동취재]

10월 말 어느 날 골목길을 뒤덮었던 이태원 참사가 한 달이 흘렀다. 많은 이들의 눈물과 위로로 점철된 기간 처음 한주는 숙연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살 떨리는 경험담과 당시의 끔찍했던 분위기는 어느덧 사라졌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우리 마음속에 이태원은 빠르게 사라지고 이제 일상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국민 모두 일종의 금기라도 된 것처럼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지 않는다. 커뮤니티에서도 이제 '이태원'이란 단어만 보여도 시사게시판 정도에서나 격하게 반응할 뿐, 그 외에는 정치적인 냄새를 풍긴다며 꺼리는 분위기다.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정치판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의미 없는 명분과 책임 전가를 위한 싸움판이 벌어진다는 것을.

이태원 참사 한 달. 이제는 누구도 더는 '윤석열의 정치'를 말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를 잘할 거란 기대가 애초부터 크지 않았거니와,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 정치 이전 국가의 근본 기능에 속한 문제라서 그렇다. 재난을 미리 막고 사후에 잘 수습하는 건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대국가의 기본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위시한 이 정부의 책임 있는 주체들이 이태원 참사 뒤 보여준 말과 행동은 통치의 근본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지난 한 달 그들이 쏟았던 에너지 대부분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를 겨냥한 법적·행정적 책임 추궁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 논란으로 번지는 걸 막는 데만 집중했다. 앞장서 이런 지침을 제시한 건 대통령이다.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일갈했다.

진상규명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었던 한 달이 지난 29일에는 화물연대 총파업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며 타협 의지를 아예 뭉개버리는 또하나의 참사가 일어났다. 윤 대통령은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검사 사전에는 타협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곧바로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추진하겠다며 파상공세를 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 때처럼 또다시 국민과 국회 뜻을 무시한다면 지체없이 탄핵소추안까지 추진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탄핵소추 카드'를 공식화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이상민 해임건의안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내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는 방침이다.

협치와 타협을 모르는 윤석열 정권은 사회재난으로 인한 희생에는 한사코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행정 하부단위로 책임을 떠넘겨 꼬리 자르기를 꾀하며 제 편인 미디어와 손잡고 '프레임 바꾸기'를 도모한다. 불행의 일차 원인이 피해 당사자의 잘못된 선택에 있는 것처럼 '개인화'하거나,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돌려 문제 자체를 '윤리화'하는 것이다. 이런 바꿔치기 메커니즘은 대형 재난이나 참사에선 어김없이 작동한다. 국가는 잠재적 위험에 대비할 정책 생산을 위임받았고, 그것을 실행할 권력과 자원을 독점적으로 소유한다. 따라서 재난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의 오류와 실패를 하나하나 되짚고,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게 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도 참다못해 협의회를 구성했다. 희생자 65명의 유가족으로 구성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가칭) 준비모임은 28일 성명을 내고 "정부에 유가족의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하고,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며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는 일부 책임자들에 대해서만 수사와 조사를 하면서 유가족들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 및 책임 규명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왜 국가배상을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부터 하느냐"고 성토했다. 이들은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조치가 없어서 유가족들은 고립된 채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다. 유가족들은 서로 소통할 기회를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고 협의회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정부는 유족들이 요구한 이상민 장관 해임을 시작으로 본격 수습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30일 발의하고 내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이 통과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이 장관을 감쌀수록 사태 수습 의지는 의심받고, 여론은 악화될 것이다. 내달 시작되는 국회 국정조사에서 여야는 성역 없는 조사로 참사의 실체적 진실과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산·법이 뒷받침된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국정조사를 정쟁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진실 규명에 당력을 총동원 해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재발 방치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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