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 "낯설지만 자유로워"…한채원·박수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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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산다] "낯설지만 자유로워"…한채원·박수민 대표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06.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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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대학 졸업하고 광주 정착…쇠락한 구도심에 책방 열어
"서점이면서 서점 아닌 공간, 잘 이끌고 싶어"
'이서점' 박수민(왼쪽)·한채원 공동대표[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이서점' 박수민(왼쪽)·한채원 공동대표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낯선 곳에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지만,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어요."

광주의 대표적 구도심인 동구 충장로 5가에 동네 책방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이서점)를 연 한채원(27)·박수민(27) 공동대표는 지방살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두 청년은 광주에 온 지 2년만에 동네 책방을 열었다.

대전이 고향인 한 대표와 울산이 고향인 박 대표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고달픈 서울살이를 온몸으로 느꼈다.

상상을 초월한 비싼 집세는 물론, 어디를 가도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가 힘겨웠다.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들은 우선 고향을 배제하고 광역시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해 살아보기로 했다.

박 대표는 "5·18이라는 인권과 비엔날레라는 예술도시의 이미지가 있어 뭔가 하면 될 것 같아 광주를 선택했다"며 "답사차 광주에 왔을 때, 힘들지만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을 만나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광주에 온 두 사람은 광산구 청년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문화기획 활동에 들어갔다.

6개월간 청년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방 살이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동구가 운영하는 빈집 청년창업 채움프로젝트에 선정돼 쇠락한 충장로 5가의 한 상가를 빌려 동네책방을 차렸다.

책방 이름인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따왔다.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내부 모습[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내부 모습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목수인 한 대표의 아버지와 함께 만든 책꽂이에는 시, 소설, 건축, 에세이, 철학, 사회학, 여성 등 다양한 장르의 책 300여권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이서점' 은 두 대표가 읽어본 책이거나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을 선정한다.

최근에는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의 이반지하 작가를 초청해 토크 콘서트를 열었는데 전 좌석이 매진됐다.

편지 쓰기 소모임과 작은 공연도 여는 등 크고 작은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이반지하' 토크 콘서트[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이반지하' 토크 콘서트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에 비해 여유로운 일상을 만끽하고 있지만 지방 살이가 편한 것만은 아니다.

미술관 등 전시장이나 공연장이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공동체도 찾기 힘들다.

한 대표는 "광주가 인권도시라고 하는데 저상버스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너무 부족해 그 슬로건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적 인프라나 공간도 굉장히 아쉽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소수자들이 함께 하는 우정 공동체를 보기 힘들다"며 "마음에 딱 맞는 친구도 찾기 어려워 마치 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타향살이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책방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집을 마련한 두 청년은 매일 광주의 구도심을 걸으며 이곳에서 터전을 일구며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책을 매개로 재미있는 일을 만들고, 소소하지만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리는 삶이다.

한 대표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집에 둘이 있을 때가 드물다"며 "친구들이 광주에 와서 살고 싶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모두가 좋은 리더가 되라고 하는데 저는 남을 잘 따르는 팔로워쉽이 있는 것 같다"며 "행정기관의 지원사업에 의존하기 보다는 우리만의 힘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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