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삶터이자 자기 성장 공간,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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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삶터이자 자기 성장 공간,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구"
  • 조미금 기자
  • 승인 2023.06.15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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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공동체 역사, 서민경제의 흥망성쇠 드러나는 보물 같은 이야기
광주여성가족재단, 전통시장 여성상인 구술채록집 '시장은 나의 힘' 발간
'시장은 나의 힘' 구술채록집 표지

광주여성가족재단은 광주 전통시장 여성상인 6인의 구술채록을 담은 '시장은 나의 힘'을 15일 발간했다.

이 책은 '광주시민이 기록하는 광주여성의 역사'라는 취지로 재단이 추진해온 광주여성사 발굴 및 아카이빙 사업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이번 구술채록집은 기술이나 자본 없는 서민들이 특별한 진입장벽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고 특히 산업화 전후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많은 여성들이 유입돼 상업행위를 했다는 측면에서 시장의 공간성에 주목했다.

구술에 참여한 여성상인들은 대부분 전통시장이 상설시장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1970년대 시장에 진입해 1980~90년대 초반까지의 황금기를 보내고 1990년대 중반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전통시장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이다.

이들은 시장의 진입 계기와 업종별 노동 경험, 시장 특성에 따른 상업행위의 차이, 일과 가정의 양립, 장사의 기술과 원칙 등을 구술했다.

이 책을 통해 여성상인으로서 노동 경험과 삶을 들려준 구술자는 ▲양동시장의 박수복(1943년생, 장사경력 54년, 식당) ▲서방시장의 박금자(1949년생, 장사경력 48년, 방앗간) ▲대인시장의 한순덕(1951년생, 장사경력 45년, 가방판매) ▲남광주시장의 구순자(1961년생, 장사경력 41년, 수산물판매) ▲양동시장의 정명순(1958년생, 장사경력 41년, 한복 제작) ▲말바우시장의 문경자(1960년생, 장사경력 32년, 과일판매)이다.

이들의 연령은 81세에서부터 62세에 걸쳐 있으며 장사경력은 54~32년이다.

이들이 시장에 진입하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리어카에서 호떡과 튀김을 팔기 시작해 거리에 좌판을 열다가 점포를 얻게 된 이가 있고, 부모나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은 이도 있으며,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지의 권유로 장사를 시작하게 된 이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상인들은 자신만의 장사 철학을 정립했다.

"이득 덜 보고 잘 만들어주면 손님이 따르게 돼 있다."(박수복), "물건을 사고 안 사고를 떠나서 지나가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된다."(한순덕), "막 싸게는 안 드리지만 최고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갖다가 정직한 가격을 드리려는 그 마음으로 제가 장사를 해요."(구순자)라는 말처럼 '타인을 이롭게 해야 자신도 잘 된다'는 이타적이고 호혜적인 관점을 체득한 것이 오랜 장사의 비법인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점포를 지켜야 하는 상인이자,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했던 구술자들은 그 삶을 '전쟁'같았다고 표현한다.

특히 임신과 출산, 양육의 시기에 장사를 겸해야 했던 여성들은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럴 수 없을 경우 아이를 점포에 눕혀놓고 손님을 맞았으며, 급할 때는 이웃 상인에게 맡겨놓기도 했다.

기저귀나 분유 등 아이용품과 본인의 도시락 등을 챙기느라 짐을 싸들고 출근하는 자신을 '1톤 트럭' 같았다고 표현한 구술자도 있었다.

가정 내 성역할이 견고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해나가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부담과 이중노동은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주먹밥을 시작한 건 시장의 여성상인들이었다.

이들은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공동체를 구했다.

광주가 봉쇄되고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자동차가 불타고 총소리가 나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시장 여성상인들은 '우리 애들 밥이나 먹이자'는 단순하지만 고귀한 연대를 실천했고 이는 광주가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밥심이 됐다.

그 이야기를 이번 구술에서 들을 수 있다는 건 반갑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인이자 자영업자, 가게 운영자로서 전통시장 여성상인들은 시장 진입부터 판매, 마진을 내는 과정을 모두 해낸 그야말로 전통시장의 산 역사이자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여성상인들에게 시장은 그저 물건을 파고 돈을 버는 생존의 공간을 넘어서 정체성과 자부심, 경제인으로서의 안목을 키워주는 자기 성장의 공간이었다.

또한 시장은 이웃 상인들과의 교류, 손님들과의 오랜 신뢰관계, 상인회를 통한 조직적 경험을 통해 여성들이 세상을 읽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구가 되었다.

이렇듯 여성상인들의 이야기는 광주 도시공동체의 변화와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시장의 형성과 부흥, 쇠락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서민경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통시장은 시장 인근의 인구변동, 도시의 성장과 발전, 도시계획과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전통시장의 상업행위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관혼상제 의례나 명절 관습, 식생활, 의복 등 생활문화의 변화 또한 시장의 생존에 영향을 줬다.

결론적으로 시장은 시대적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역동하는 삶터이자 일터라 할 수 있으며 여성상인들은 시대적 변화를 읽고 생존하기 위한 자신만의 기술과 철학을 정립한 직업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광주시민들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광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집념과 헌신의 시대정신을 일구어 온 여성상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는 "이 책은 전통시장을 자신의 일터이자 삶터로 삼고 최선을 다해 생활을 일구어온 여성 상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이런 여성들의 삶이야말로 광주공동체를 만들어온 저력이자 문화적 유산"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책의 제목처럼 '시장은 나의 힘'이고 '여성은 광주의 힘'인 것"이라면서 "앞으로 재단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광주여성들의 활동과 삶을 시민과 함께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 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구술채록집은 무료로 배포되며, 책을 받아보기를 원하면 재단으로 연락하면 된다.(062-670-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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