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18 흙이 맺어준 인연으로 시골 정착한 도예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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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산다]-18 흙이 맺어준 인연으로 시골 정착한 도예가 부부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07.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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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일·이혜진 씨, 옹기 배우러 찾은 전남 보성서 24년째 '시골 라이프'
"자연은 늘 주기만…인터넷 덕분에 시골 머물며 도시서 돈 벌어"
전남 보성에서 24년 차 '시골 라이프'를 누리는 홍성일·이혜진 도예가 부부
전남 보성에서 24년 차 '시골 라이프'를 누리는 홍성일·이혜진 도예가 부부

서울 아파트 '한 평'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너른 집터를 마련한 부부는 생면부지인 시골 마을에서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단란한 가정까지 꾸렸다.

서울 태생인 홍성일(50)·이혜진(47) 씨 부부는 생애 절반의 시간을 연고가 없는 전남 보성에서 보내고 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두 사람은 지난 2000년, 9대에 걸쳐 300여년의 전통을 가진 보성 미력옹기 공방에서 우연히 만났다.

60대 안팎인 도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20대였던 홍씨와 이씨는 흙이 맺어준 인연으로 사랑을 싹틔웠다.

홍씨와 이씨는 미력옹기의 비법을 익히면 서울로 돌아가려 했지만, 연애 시절 강진, 영암, 목포, 여수 등을 여행하며 남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작은 작업장 하나 얻는데 최소 수억 원이 드는 서울 대신 그간 정든 보성에서 새 출발을 하기로 했다.

양쪽 집안 어른들은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낯선 시골에 '고립'될 젊은 부부를 한목소리로 걱정했지만, 이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보성에서 알게 된 또래 친구의 소개로 부부는 농촌 마을 빈집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공짜 신혼집을 얻었다.

대나무 비닐하우스와 벽돌로 얼기설기 만든 장작 가마를 옹기 작업장 삼아 5∼6년 준비 기간을 거쳤다.

당시 시세로 서울지역 아파트 3.3㎡(1평)당 평균가도 안 되는 1천500만원으로 땅 '150평'을 샀다.

부부는 30대 초·중반이었던 이 시기가 인생의 분기점이었다고 떠올렸다.

농촌주택개량 지원사업의 저금리 대출에 가족의 도움까지, 건축비 약 1억원을 마련했다.

홍성일·이혜진 도예가 부부의 공방 도구와 작품(왼쪽)·홍성일 도예가 제공(오른쪽)]
홍성일·이혜진 도예가 부부의 공방 도구와 작품
(왼쪽)·홍성일 도예가 제공(오른쪽)]

1층을 옹기 공방, 2층은 다락방을 갖춘 생활공간으로 설계한 목조 주택을 지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깨끗하며, 소음은 없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이곳에서 부부는 '시골 라이프'의 맛과 멋을 누리며 두 딸을 길렀다.

자신들 또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린 도예가로 성장했다.

새내기 대학생이 돼 대학 기숙사로 떠난 큰딸, 중학생인 막내딸은 방학에 서울 친척 집을 왕래하면서도 시골 생활에 단 한 번의 불평이 없었다.

홍씨는 "도시에서 돈 벌어 시골에서 쉬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신조"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과 소통하고 어떤 공간에도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시골에 머물면서도 그러한 신조를 실천하도록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보성 정착 24년 차에 접어든 부부는 여유로운 시골 삶을 동경하는 지인에게 가장 먼저 전하는 조언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하는 고민은 시골도 도시 못지않다.

다만, 자신들이 마주했던 고민거리는 이방인과 원주민의 경계 선상에서 비롯했다.

사람의 틈바구니에 치열하게 부딪힐 일이 아니었기에 노력과 지혜, 시간만으로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수시로 출몰하는 벌레나 야생동물, 부족한 편의시설과 문화공간은 걱정거리조차 안 된다고 웃음 지었다.

홍씨는 "시골의 삶은 자연과 환경, 날씨에 순응하고 대비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 자연은 사람과 싸우려 들지 않고 늘 주기만 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도시 삶의 염증에 시골 이주를 진지하게 상담하는 서울 친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 합의"라고 항상 당부한다.

8일 홍씨는 "자연이 주는 혜택만 생각해 시골로 온다고 한들 없던 불화가 생긴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어린 자녀까지 온 가족이 함께 변화의 방향, 추구하는 목표를 충분히 이야기하길 바란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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