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매년 수십명의 아기가 삶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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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매년 수십명의 아기가 삶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07.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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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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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신고가 누락된 아동 2천123명 가운데 11.7%인 249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어난 아이 중 매년 수십명이 법의 사각지대 속에 삶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셈이다. 그나마 이 같은 수치는 생사가 확인된 경우만 집계한 것으로 아직 수사 중인 사례가 수백 건이어서 사망자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확인한 1천28명 가운데 771명의 아동은 원가정에서 생활하거나 친인척 양육, 입양 등의 형태로 지내고 있었으나 22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의 의뢰로 경찰이 조사한 1천95명의 경우 254명의 생존과 27명의 사망이 확인됐고, 814명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복지부가 개별 사례의 구체적인 사망 경위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대다수는 범죄와 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산 얼마 뒤 질병 등으로 사망한 경우 보호자들이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망 아동은 수백명이지만 경찰이 범죄 연관성을 의심해 검찰에 송치한 보호자도 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아 1천명당 1세 미만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영아사망률은 2021년 현재 2.4 명이다. 이미 사망해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가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0%를 훌쩍 넘는 사망 비율은 정상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감사원 감사가 있을 때까지 정부가 출생 미신고 아동의 실태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 대상이 아닌 2015년 이전에는 이런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에 의료기관의 출산 기록과 비교해 출생 신고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복지부, 질병관리청 등 유관 기관이 감사원 감사 전까지 이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방치한 것인지도 따져 봐야 한다.

이 사건 이후 국회는 의료기관이 아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너무 늦었지만 적어도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난 아기가 공식 기록도 없이 살아가거나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되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출생 등록이 생명의 존엄성 차원에서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신생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와 국회도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경우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산모의 '병원 밖 출산'이 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호출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사회·경제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놓인 여성이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정부가 대신 출생신고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산모와 분리돼 입양 대상 아동이 된다. 양육 포기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친부모에 대한 아동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에서 논란이다. 친부모가 스스로 자식을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동이 성인이 된 후에라도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보완책도 심도 있게 검토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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