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이제는 방탄정국 매듭짓고 '정치' 복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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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이제는 방탄정국 매듭짓고 '정치' 복원하자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09.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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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양당 원내대표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장 주재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김진표 국회의장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2023.9.27 [공동취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27일 새벽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총 892자 분량의 기각 사유서를 통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진행된 9시간 17분에 걸친 영장심사에서 검찰과 이 대표 측이 맞붙은 최대 쟁점은 증거인멸 우려였다. 결국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200억원 배임),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800만달러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데 대해 법원은 방어권 보장을 주장해온 이 대표 손을 들어줬다.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로 벼랑 끝 위기에 내몰렸던 이 대표는 구속을 면하면서 일단 직면한 최대의 위기를 넘겼다.

검찰 입장에선 이 대표와 주변을 향한 수사 동력이 떨어지게 됐다. 이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느냐 마느냐는 수사의 진척도와 성과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 요소다. 검찰은 추석 연휴 이후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영장 기각으로 이 대표와 민주당이 주장해온 '정치적 탄압 수사' 프레임이 일정하게 힘을 받으면서 검찰로서는 정치적 역공을 받을 소지도 커졌다. 그러나 영장 기각은 구속의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뿐,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유 부장판사는 이 대표의 혐의 중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됐다고 적시했고, 백현동·대북송금 의혹을 놓고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유무죄를 최종적으로 가려낼 법적 공방의 무대는 본안 재판이다. 이미 진행 중인 선거법 재판을 비롯해 이 대표 앞에 줄줄이 놓인 공판 일정과 결과는 그의 사법리스크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이 대표는 당장의 사법적·정치적 위기는 모면했지만 그동안 지나치게 '방탄'에 골몰하면서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 대표는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면 영장 발부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표결 전날 부결을 직접 호소하기까지 했다.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해놓고는 이를 뒤집었다. 가결 이후 친명(친이재명) 지도부는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의 가결투표를 해당 행위로 규정하며 이탈자 색출작업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당은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졌다. 추석 연휴 이후 당무에 복귀할 이 대표가 어떤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당의 내분이 확전이냐 수습이냐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손상된 리더십을 회복하고 당 장악력을 극대화하려고 이른바 가결파 숙청에 나선다면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돌이킬 수 없는 내홍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 자명하다. 비명계 탈당과 맞물려 분당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반대로 당의 분열이 총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하에 이 대표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갈등을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지만 실현 여부는 물음표다. 당내에선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의 거취 표명을 포함한 전면적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을 강하게 촉구했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사과와 사퇴 요구로 맞불을 놓으면서 서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저당 잡힌 방탄 정국을 조속히 매듭짓고 본업인 '정치'를 복원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 대표의 사법적 운명은 향후 재판절차에 맡기고, 당장 각 상임위와 본회의 테이블에 수북이 쌓인 민생법안들을 처리하는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나마 여야가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다음 달 6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표결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행여 민주당이 영장 기각을 고리로 대여투쟁 노선을 강화하면서 정기국회가 파행되어선 안 될 것이다. 다음달 국정감사부터 강대강 충돌이 격화하고 주요 법안과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식물 국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더 이상 민주당 내분으로 인한 반사이득에만 기대지 말고 야당과 대화의 끈을 이어가며 정치력을 발휘할 때다. 소통과 협치의 복원을 주문하는 추석 민심을 여야 모두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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