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숫자' 빠진 정부 연금개혁안, 무책임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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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숫자' 빠진 정부 연금개혁안, 무책임한 것 아닌가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10.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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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 발표 향하는 조규홍 복지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2023.10.27 (사진=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27일 국민연금 개혁의 최종 정부안이 될 것으로 주목받아온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우려하던 대로 알맹이가 빠진 맹탕 개혁안에 그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험료율, 소득대체율과 같은 모수개혁의 구체적 수치를 담은 압축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포괄적인 구조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머물렀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실상 연금개혁의 공을 국회로 떠넘긴 모양새가 되면서 자칫 총선을 앞둔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유력안을 도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압축된 모수개혁안을 내놓는 데 따른 부담이 컸을 수 있다. 복지부도 "의견이 다양한 만큼 특정안을 제시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정부가 언급한 방향성은 '더 받는' 개혁보다 '더 내는' 개혁 쪽에 맞춰진 듯하다.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보다 인상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퇴직·기초연금을 아우르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틀 속에서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검토하겠다며 결정을 미뤘다. '늦게 받는' 연금 지급연령 상향 문제에 대해선 "고령자 계속 고용 여건이 성숙한 이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는 개혁 방향성의 핵심 3요소인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 시기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모수개혁과 더불어 다른 연금과 연계한 큰 틀의 구조개혁과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모수개혁은 연금개혁 논의의 첫 단추이자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평가된다. 민감하다고 기피하다 보면 논의 자체가 겉돌다 원점으로 되돌아올 개연성이 크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무려 24가지나 되는 시나리오를 나열만 했던 전문가들에 이어 정책결정권을 쥔 정부조차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변죽만 울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의 하나로 연금개혁을 꼽고도 국민을 설득할 구체적 개혁 단일안이나 압축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종합운영계획은 국무회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이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된다. 그러나 정부가 압축된 안을 제시해도 국회 공론화 논의에는 극심한 진통이 뒤따를 판인데, 핵심 수치가 결여된 정부 안을 토대로 시작되는 국회 차원의 논의와 입법 절차가 힘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부가 '숫자' 없이 '방향'만 담은 안을 제시하면서 국회 차원의 논의가 과연 첫발조차 제대로 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지난해 7월 출범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미 지난 4월 한차례 활동시한을 연장한 데 이어 이달 말까지인 활동 기한을 내년 5월 말까지로 다시 미뤄놓은 상태다. 내년 4월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사실상 21대 국회에서의 합의안 도출은 물 건너갔고 다음 국회로 논의가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개혁의 시기가 늦을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바통을 넘겨받은 국회에서나마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생산적인 연금개혁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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