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또 밀실로 넘어간 예산안…'깜깜이·쪽지 예산'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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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또 밀실로 넘어간 예산안…'깜깜이·쪽지 예산' 우려된다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11.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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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소위 회의장 앞에서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예산심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올해도 예외 없이 국회에 예산안 심사를 위한 '소(小)소위원회'가 구성됐다. 소소위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2차관 등 소수의 인원만 참여한 가운데 27일 가동을 시작했다. 지난 13일부터 국회 예결위 예산소위에서 예산안을 심사했으나 R&D(연구·개발) 예산, 권력기관 특수활동비, 원전·재생에너지 예산, 새만금 사업 관련 예산 등에 대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여야는 소소위를 통해 이들 쟁점 예산을 일괄 타결할 방침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은 예결위 심사를 거쳐 다음 달 2일까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데다 여야의 대치가 첨예해 소소위 가동에도 법정시한 준수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 심사가 오는 30일까지 완료되지 않을 경우 다음 날에는 657조원 규모의 내년 정부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독 수정 예산안 처리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여야가 정기국회 종료일인 다음 달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가운데 총선 등 외부의 정치 상황이 변수로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소소위 구성은 신속한 예산 심사라는 명분으로 매년 관행처럼 되풀이되고 있으나 걱정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예결위와 달리 법적 근거가 없는 소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속기록이나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깜깜이 밀실 심사'인 셈이다. 매번 의원들의 지역 민원인 '쪽지 예산'이 난무했고, 예산 주고받기가 횡행했다. 총선을 앞둔 올해는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더욱 극성을 부릴 공산이 크다. 그러잖아도 최근 들어 여야가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특별법을 앞다퉈 발의하는 등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동원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자기 것도 아닌 나랏돈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숙의와 토론이 생략되고, 투명성도 결여된 소소위가 나라 살림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협상의 효율성을 위해 소소위를 가동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그 결과라도 시시각각 공개해 여론의 검증을 받는 것이 세금을 내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예산 심사에 소소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8년이다. 당시 여야가 예산안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자 이런 '묘안'을 냈고 이후 관행으로 굳어졌다. 2014년에는 국회법 개정으로 정부 원안의 자동 부의제까지 도입됐다. 그런데도 이후로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통과한 것은 2014년과 2020년, 딱 두 번뿐이다.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헌법 제45조가 사문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에도 예산안이 12월 24일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예산안이 매년 시한을 넘겨 벼락치기식으로 처리되는 것은 국회의 늑장 심사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산안이 지난 9월 초 국회에 제출됐으나 본격적인 심사는 이달에야 시작됐다. 시간이 없어 불가피하게 소소위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 여야가 이심전심으로 시간을 끈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늦었다면 제대로라도 처리해야 한다. 국가의 지향점을 담고 있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예산안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국민들도 예산안 처리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면서 공공의 자원을 사익으로 편취한 정치인이 누구인지 가려내 표로 심판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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