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재건축·재개발 기준 합리적 개선하되 투기 불씨 안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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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재건축·재개발 기준 합리적 개선하되 투기 불씨 안되게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12.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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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안전진단 추진 현수막(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지은 지 일정 기간 지난 노후주택은 당장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안전진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단 정비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주민 동의 요건을 대폭 낮추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새해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재개발·재건축 착수 기준을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히 저층 주거지의 경우 35년 이상 된 주택이 절반에 가까워 주민 불편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사업 속도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택이 너무 낡아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주민들이 있는데 건물이 위험하지 않다는 이유로 절차도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현재 아파트를 재건축하려면 우선 직접 비용을 들여 안전진단에서 D∼E등급을 받아야 한다. 위험도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만드는 등 정식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낮은 등급을 받으려 아파트 벽에 금이 가거나 녹물 수돗물이 나와도 방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안전진단을 통과하면 불안감을 느끼기는커녕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로 '경축' 현수막이 내걸리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다. 윤 대통령도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추진하려면 먼저 안전진단에서 그 위험성을 인정받아야 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 위험해지기를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안전진단 통과 기준도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들쭉날쭉해 통과 건수가 전 정부 5년간 65건에 그친 반면 현 정부에서는 올해만 160여건에 달한다. 재개발은 주택 형태와 규모, 주민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고 주민 동의 요건 등도 까다로워 곳곳에서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준공 후 30년 이상 된 노후 주거용 건물은 23만3천825동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노후 주택 비율은 2019년 39.5%에서 2020년 46.8%, 2021년 49.7%, 지난해 54.3%로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921가구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재건축·재개발 절차와 이에 따른 주택 공급 부족이 부동산 시장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공급 확대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주거용 토지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노후 저층 주거지역을 정비하거나 낡은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하는 방법이 사실상 유일한 공급 확대 대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비사업 착수 기준을 30년으로 정할 경우 서울 주택의 절반 이상이 혜택 범위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재건축·재개발만큼 휘발성 있는 재료도 없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 때는 바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현 정부는 아파트 안전진단 요건을 대폭 완화해 재건축 문턱을 낮추고 재건축 부담금을 줄여주도록 초과이익환수법도 개정했지만, 고금리에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건설사들이 서울 강남 등 일부 '알짜배기'를 제외하고는 사업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금리가 낮아지고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면 시장 불안의 불쏘시개가 될 공산도 있다. 과거 여러 정부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이쪽 부문에서 규제를 풀어 건설 경기부터 부양하려다 나중에 부동산 시장 과열과 집값 폭등이라는 부메랑을 맞기도 했다. 정부는 같은 실책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후주택 기준 설정 등 정책 입안 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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