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주취전쟁] "신고 70%는 술 문제죠"…취객 대응에 몸살 앓는 치안 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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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주취전쟁] "신고 70%는 술 문제죠"…취객 대응에 몸살 앓는 치안 일선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12.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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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술자리 늘며 취객 관련 사건·사고도 증가…발길질·오물 투척도 예사
쓰러진 취객 건강상태 확인까지 일선 경찰 몫…"언제 돌발상황 생길까 늘 긴장"

"제발 집에 좀 가세요. 제발."

술자리
[연합뉴스TV 제공]

지난 15일 오후 10시께 경기 수원서부경찰서 매산지구대 앞. 술에 취한 30대 남성 A씨는 경찰의 거듭된 부탁에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전형적인 취객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겠다"는 이유로 지구대를 찾은 A씨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다가, 문서를 작성 중인 경찰에게 계속 말을 걸다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무시하는 거냐며 대뜸 화도 냈다.

참다못한 경찰이 업무에 방해되니 나가달라고 하자 "나도 세금을 내는 시민이니 이 공간을 쓸 권한이 있다"는 궤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A씨는 30분 넘도록 지구대 안과 밖을 오가며 고성을 질러댔다.

지구대 내부에는 20대 여성 B씨도 있었다. 그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돼 조사받고 있었다.

B씨는 같은 날 오후 9시께 수원역 로데오거리에서 함께 술을 마신 지인들과 말다툼을 벌이다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과 처음 마주했다.

그때까진 대수로운 상황도 아니었다. 경찰관이 다툼을 중재하고 해산시키면 그대로 귀가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B씨는 별안간 "왜 나한테 뭐라 그러냐"며 경찰관을 밀치며 발길질했고 급기야 경찰관의 발목을 깨물었다.

물린 발목은 흉터가 남을 정도로 깊게 팼다. 흥분한 B씨를 제압하느라 경찰관의 양손에도 생채기가 가득 생겼다.

지구대 관계자는 "만취 상태가 아니라면 벌어지지 않을 사건이 너무 많다"며 "현장서 체감하기로는 112 신고의 70∼80%가 술과 관련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B씨에 대한 조서 작성이 마무리될 때쯤이던 오후 11시 30분께. 이번에는 택시 기사가 지구대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와 "승객이 자꾸 욕을 하며 행패를 부리고, 내리라고 해도 내리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경찰관이 나가보니 승객은 그제야 슬그머니 택시에서 내렸다. 그는 다름 아닌 1시간 전 지구대를 떠났던 A씨였다. 그렇게 다시 지구대로 돌아온 A씨는 또다시 30여 분간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고성을 이어갔다.

금요일 밤의 인계박스

비슷한 시각 인근 수원시 중심 유흥가인 '인계박스'의 한 편의점 앞에서도 난처한 표정의 경찰관들이 술에 취한 채 고성을 지르는 30대 남성 C씨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C씨는 조용히 귀가해달라는 경찰관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편의점 직원에게 내 말 좀 전해달라"며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로 이 편의점 아이스크림 판매대에 기대고 서 있다가 편의점 직원으로부터 "비켜달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화를 내며 매장 밖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C씨의 주정 때문에 도저히 정상 영업이 어렵자 편의점 직원이 카운터에 설치된 비상벨을 눌러 112에 신고한 것이다.

그의 난동은 제복입은 경찰관들이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멈출 줄 몰랐다. C씨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던지며 욕설을 이어갔고, 주변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경찰관들이 "그러시면 안 된다", "돌아가시라"며 10여분간 달랜 끝에 C씨는 겨우 자리를 떠났다.

'인계박스'를 관할하는 수원남부경찰서 인계지구대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야간 근무 시간대 112 신고가 물밀듯이 들어온다.

야간 근무 시간대인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겨울철엔 50~70건, 날씨가 좋을 땐 80~100건가량의 신고가 쇄도하는데, 상당수가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거나 외부에 쓰러져 있어 경찰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이다.

분실물 관련 신고도 많다. 실제 취재진이 이날 밤 경찰과 함께 순찰차를 타고 1시간가량 '인계박스' 순찰에 동행하는 과정에서 몇몇 행인은 차량을 향해 길에서 주운 휴대전화나 지갑을 들어 보이며 습득 신고를 했다.

인계지구대 나유한 3팀장은 "사람들이 한창 술에 취하는 시간대인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2∼3시까지 112 신고가 집중되는데, 이때는 보통 지구대 야간 근무 인력 10여 명이 현장에 출동하거나 신고를 받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며 "경찰관에게 욕설하고 제지에 따르지 않는 '인사불성'의 취객들을 상대하는 건 예사고, 순찰차나 지구대에 용변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취객에 안전조치 취하는 경찰관들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외부에 쓰러져 있는 주취자들을 인계해 귀가 조처하는 과정에서도 애로사항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인계지구대 한 경찰관은 "주취자들이 술에 취해 주소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휴대전화 패턴, 가족이나 지인 연락처 등을 계속 물으며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야 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며 "쓰러져 있던 주취자가 갑자기 깨어나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어 늘 긴장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주취자에 보호조치를 할 때 건강상 문제가 있다면 경찰이 신속하게 119에 출동을 요청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육안상으로 상태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주취자들이 무사히 귀가하지 못한다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늘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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