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벼랑 끝 절경을 걷다…금오도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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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벼랑 끝 절경을 걷다…금오도 비렁길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4.01.0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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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섬 걷기 길…겨울에도 걷기 좋아
벼랑 끝에 조성된 비렁길이 보인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태양 아래 은빛으로 반짝이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걸은 하루는 행복한 날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금오도에 있는 '비렁길'은 그런 시간을 선물한다.

'비렁'은 순우리말인 벼랑의 여수 사투리이다. 비렁길은 '벼랑길' '벼랑 위 길'이라는 뜻이 된다.

금오도에는 해안 단구 지형이 많다.

지각 운동에 의해 지반이 융기하거나 기후 변동으로 해수면이 하강할 때 생기는 해안 단구는 동해안에 흔하지만, 남해안에는 보기 드물다.

금오도의 해안 단구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며 아찔한 절경을 연출한다. 비렁길은 해안 절벽과 단구 위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총길이는 18.5㎞. 매봉산(382m)과 망산(343m)을 끼고 돌므로 길의 해발 고도는 낮게는 수십 m, 높게는 200m 이상이 될 듯했다.

갈바람통

◇최고의 섬 걷기 길

금오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비췻빛 청정 바다가 빚어내는 비경이 비렁길을 걷는 내내 계속된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곳곳에서 그윽하고 깊은 숲을 만들어낸다.

'비렁길을 걷다'를 달리 표현하면 '다도해 섬 속을 걷다'가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섬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비렁길은 최고의 '섬 걷기' 길로 통한다.

금오도는 조선 시대 고종 21년(1884년)까지 봉산(封山)으로 지정돼 있었다.

봉산은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쓰일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기 위해 민간인 출입을 금지하던 산이다.

태풍으로 소나무들이 대거 쓰러지자 1885년 봉산에서 해제됐다.

사람이 거주한 역사가 짧아 지금도 원시림이 보존돼 있다.

고종은 금오도를 명성 황후에게 선물로 줬다고 하며, 이 때문에 금오도는 '명성 황후가 사랑한 섬'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섬 생김새가 자라를 닮아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라 불렀다.

굴등전망대

◇ 일출에서 일몰까지 행복한 시간…겨울에 걸어도 좋은 길

비렁길은 1∼5코스까지 5개 코스로 나눈다. 섬의 북서단인 함구미에서 시작해 동남단인 장지에서 끝난다.

5개 코스를 모두 걸으면 섬의 서쪽 해안 전부를 걷게 된다.

금오도는 작은 섬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크다.

면적은 약 27㎢. 그런 만큼 섬의 서쪽 해안을 오롯이 걷는 것은 만만한 도전이 아니었다.

풍광에 취해 발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결국 5개 코스를 하루에 다 걷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굴등전망대까지 길이 포장된 2코스는 여수시 남면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전망대까지 차를 타고 다녀왔다.

1코스(5.0㎞)는 함구미∼두포, 2코스(3.5㎞)는 두포∼직포, 3코스(3.5㎞)는 직포∼학동, 4코스(3.2㎞)는 학동∼심포, 5코스(3.3㎞)는 심포∼장지로 이어진다.

1코스 시작점인 함구미에서 30∼40분 걸으면 비렁길의 첫 번째 비경인 미역널방을 만난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로 운반해 널었던 곳이다.

미역널방의 해발 고도는 약 90m에 이른다.

억척스러웠던 섬살이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렁길은 오래전에 주민들이 땔감을 찾아 다니던 길을 정비한 탐방로이다.

새들이 다니던 길이었습니다/바람도 숨차던 길이었습니다/…아슬한 그 비렁에도 사람들이 다니던 길은 있었습니다/발 디딜 곳 없는 바위틈에 붙어 서서/가난을 낚아 올리던 길이었습니다.

길 가 나무 푯말에 새겨진 시 '금오도 비렁길'의 구절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전설이 얽힌 송광사 터, 섬의 고유한 장례 풍습을 엿보게 하는 초분, 신선대 등이 1코스의 볼거리였다.

굴등전망대에서 바라본 3코스

전설에 따르면 보조국사는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해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순천 송광사, 고흥군 송광암, 금오도에 앉았다고 한다.

이른바 '삼송광'이다.

고려 명종(1195년) 때 지눌이 남면 금오도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 절터가 송광사 옛터로 추정된다.

초분은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이다.

초분에 시신을 안치했다가 2∼3년 후 뼈를 깨끗이 씻어 본 무덤에 묻었다.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기원이 서린 토속 장례법이다.

2코스 시작점인 두포마을은 처음 사람이 들어와서 살았던 곳이라는 뜻의 '초포' '첫개'라고도 불린다.

신선대 전경

3코스는 기이한 모양의 암석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져 비렁길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풍광을 보여준다.

길은 경사가 급해 등산 기분을 느끼게 한다.

갈바람통 전망대, 매봉 전망대, 비렁다리 풍광이 인상적이다.

걷기 애호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길이다.

4코스는 거리가 제일 짧아 등산을 부담스러워하는 탐방객이 많이 찾는다.

여행자를 매료할 긴 출렁다리가 건설되고 있었다.

5코스 끝인 장지 마을에서는 그림 같은 안도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섬의 형상이 날개를 펼친 기러기 모양인 안도는 금오도와 안도 대교로 연결돼 있다.

수산업이 발달한 여수에서 어업 전진 기지 역할을 했던 안도에는 천혜의 낚시 항, 어촌 체험 마을, 해송과 동백이 군락을 이루는 동고지 마을, 도보 여행로인 기러기 길 등이 유명하다.

금오도행 배 안에서 맞은 일출

금오도에는 다양한 종의 새들이 서식하는 것 같았다.

무심한 듯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이 귀를 즐겁게 했다.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었건만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온화했다.

비렁길의 관광 및 탐방 성수기는 상당히 길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 단풍이 아름다운 11월까지 이어진다.

그런 통념을 깨도 좋을 만큼 겨울에도 비렁길은 걷기에 쾌적했다.

여수 신기항에서 떠오르는 해 속으로 빨려들 듯 배를 타고 금오도로 향했다.

장지마을에서 여정을 마쳤을 때 태양은 바닷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빨갛게 이글거리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차곡차곡 쌓인 감동들은 어둠을 뒤로 하고 신기항으로 되돌아 나올 때 가슴 뻐근하게 하는 뿌듯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도대교 근처에서 맞은 일몰

◇ 일레븐 브릿지와 금오도

금오도는 2010년 비렁길이 조성되기 전에도 등산과 낚시로 유명한 섬이었다.

함구미에서 매봉산을 지나 옥녀봉(261m)을 거쳐 동쪽 해안인 검바위로 내려오는 등산로에 서면 능선 좌우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금오도는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난류 덕에 어종이 풍부하다.

국내 최대의 감성돔 산란처이며 참돔, 돌돔, 붉은돔, 멸치, 장어, 삼치 등이 많이 잡힌다.

우리가 탄 배에도 낚시꾼이 많았다.

중풍을 예방한다고 해서 방풍나물로 불리는 갯기름나물의 전국 생산량 중 70%가량이 금오도에서 재배된다.

해풍과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자란 금오도 방풍나물은 향이 진하고 맛이 뛰어나다.

방풍나물 밭

방풍나물은 봄나물로 알려져 겨울에는 판로를 유지하기 어렵다.

수매자를 찾지 못해 밭에 방치되고 있는 방풍나물이 안타까웠다.

여수에는 유인도 48개, 무인도 317개 등 365개의 섬이 산재한다.

섬들이 현대식 다리로 연결되고 있었다.

일레븐 브릿지(11개 다리) 사업은 전남 고흥 영남면에서부터 여수 돌산읍까지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한다.

고흥 영남면과 여수 적금도를 잇는 팔영대교, 적금도와 낭도를 잇는 적금대교, 낭도와 둔병도를 잇는 낭도대교, 둔병도와 조발도를 잇는 둔병대교, 조발도와 화양면을 잇는 화양조발대교, 화양면과 백야도를 잇는 백야대교, 화태도와 여수 돌산읍을 잇는 화태대교 등 7개 다리는 이미 건설돼 있다.

화태대교

백야도와 제도를 잇는 화정대교(가칭), 제도와 개도를 잇는 제도대교(가칭), 개도와 월호도를 잇는 개도대교(가칭), 월호도와 화태도를 잇는 월호대교(가칭)는 모두 2028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이 다리들이 연결할 지역은 고흥 영남면을 제외하면 전부 여수시에 속하는 육지이거나 섬들이다.

11개 다리가 완공되면 다리 박물관을 떠올리는 다양한 교량과 보석 같은 섬이 어우러져 세계적인 해양관광 벨트가 구축될 수 있을 것 같다.

월호도와 금오도를 잇는 연도교도 추진되고 있다.

연도교가 건설되면 금오도는 육지와 연결된다.

경상남도 남해와 여수를 잇는 해저터널도 건설된다.

비렁길이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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