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심각한 공천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개별 통보한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명단에 친문(친문재인)을 포함한 비명(비이재명)계가 대거 들어간 것이 뇌관이 됐다. 사실상 공천 배제 수준의 불이익을 받게 된 비명계 의원들은 "공천 학살"이라고 일제히 반발하면서 공천평가 기준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21일 오전 열린 의원총회는 이재명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사당화' 논란에 대한 친문·비명계의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잠복했던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최악의 위기에 맞닥뜨린 형국이다.

어떤 정당이건 총선을 앞두고는 크고 작은 공천 잡음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정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의 공천 과정은 공정·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비명계의 주장대로 '이재명 사당화'라는 인상을 줄 소지가 다분하다. 평가 하위 20% 대부분이 그간 이 대표에 반기를 들어온 비명계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고, 의정활동에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돼온 비명계 일부 의원들이 줄줄이 탈락 위기에 놓이고 그 자리에 주로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이 공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부 지역구에선 현역의원을 제외한 채 후보 적합도 조사가 진행되는 등 논란을 키웠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것이 당내 비판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찍어내기 공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나올 만하다.

이 대표는 "가죽을 벗기는 아픈 과정"이라며 진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파장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당 원로들까지 나섰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날 임채정·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진 데 이어 정세균 전 총리와 공동 입장문을 내고 공천 논란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 대표가 나서서 상황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두 전직 총리는 "이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당 지도부가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총선 승리를 위해 작은 이익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무겁게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뒤지는 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최근 당내 상황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공천 난맥상을 보이면서도 정권심판론을 내걸고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대표가 직접 나서 문제 제기에 답하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잡음을 수습하기 바란다. 정부와 여당의 실정에만 기대는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의 제1야당이 과연 민심을 받들어 국정을 올바르게 견제할 수 있는 수권정당인지에 대해 유권자들의 의구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