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아니라 혜택 안된다더니…교육부, 1년 안 돼 태세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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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아니라 혜택 안된다더니…교육부, 1년 안 돼 태세 전환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4.03.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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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장학금 지원 대상, '월 소득 1천700만원' 가구 학생까지 확대 추진
작년 학자금 대출제도 개정 땐 "취약계층만 지원 필요" 주장
민생토론회 '청년신문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청년신문고 첫 번째 주제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가 국가장학금 대상을 소득 '8구간 이하'에서 '9구간 이하'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까지 혜택 대상을 확대하는 데 난색을 보였다가 총선을 앞두고 월 소득 인정액이 2천만원에 가까운 9구간까지 혜택을 줘야 한다며 '태세 전환'에 나섰다는 것이다.

뾰족한 재원 대책 마련 계획도 언급하지 않아 '선심성 대책'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 국가장학금 대상, 소득 8구간 이하서 소득 9구간 이하까지 확대

7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경기도 광명 소재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을 '소득 8구간 이하'(100만명)에서 '소득 9구간 이하'(150만명)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장학금은 소득 수준과 연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지도록 설계된 장학금이다.

한국장학재단은 국가장학금 신청 학생 가구의 소득·재산을 조사해 소득 인정액을 정한다.

소득 구간은 기초·차상위계층부터 1∼10구간으로 나뉘는데, 지금은 8구간 이하일 때만 국가장학금을 지원받는다.

소득 8구간 이하는 '기준 중위소득의 200% 이하'인 가구다. 올해 4인 가구 기준 월 소득 인정액이 1천146만원 이하일 때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손봐 내년부터는 소득 9구간 이하에도 국가장학금을 준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최고 소득 구간인 10구간을 제외하고 모든 소득 구간에 국가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대학 등록금 고지서
[연합뉴스TV 제공]

◇ 작년에는 8구간 지원에도 난색…'대학 안 간 청년'과 형평성 문제도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입장이 작년과는 온도 차가 상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대립한 바 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ICL) 제도는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학자금 지원 8구간 이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자금을 대출해주고, 졸업 후 일정 소득(상환 기준 소득) 이상을 올릴 때부터 대출 원리금을 갚도록 한 제도다.

더불어민주당은 상환 기준 소득을 올릴 때까지 발생하는 대출이자를 면제하자면서 법안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제도는 대출 시점부터 이자가 계속 붙는 구조지만,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경우 취업하더라도 소득이 상환 기준을 밑도는 기간에는 이자가 불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하며 사실상 개정안에 반대했다.

취약계층으로 보기 어려운 소득 8구간을 위해 재정을 더 투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대학교에 가지 않은 청년과의 형평성 문제도 정부는 거론했다.

지난해 4월 장상윤 당시 교육부 차관은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8구간 학생의 경우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소득이 1천만원 이상"이라며 무이자 대상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장 전 차관은 "그것보다 더 어려운 기초·차상위라든지, 4구간 이하라든지 더 취약한 쪽으로 두텁게 보호하는 게 맞지, 기초·차상위부터 8구간을 그냥 통으로 잡아서 이자 면제를 해주자는 것은 지금 재원의 규모나 재정의 효율적 사용 취지에 맞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정부의 반대에도 지난해 5월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단독으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제도 취지와 맞지 않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총리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는 이후 야당과 협의를 거쳐 '기준 중위소득 5구간 이하'인 채무자에 대해서만 졸업 후 최대 2년간 이자를 면제하기로 했다. 6∼8구간에는 정부의 뜻대로 무이자 혜택을 확대하지 않은 것이다.

새 학기를 맞은 6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바라본 학교 앞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소득 1천719만원 가구에 '혜택 절벽' 언급…재원 마련 계획도 없어

반대로 정부는 이번 국가장학금 확대 배경으로, '혜택 절벽'에 놓여 있는 소득 9구간도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 부총리는 지난 5일 민생토론회에서 "8구간까지는 교내외 장학금을 합치면 등록금의 88%까지 커버가 됐는데, 9구간은 아무런 지원이 없어 '혜택 절벽'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며 "9구간 학생들에게도 학자금 지원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소득 9구간은 4인 가구 기준 월 1천719만원을 올리는 가구다. 소득 인정액이 순수한 가구 소득이 아닌, 재산까지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작년까지의 정부 논리대로라면 취약계층으로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의 이 같은 태세 전환은 다음 달 총선을 노린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구체적인 소요 예산 추정 규모도 정부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재원 대책 역시 뾰족하게 마련된 게 없다.

일각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재원으로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으나, 교육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는다"며 "재원 문제는 재정 당국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번 정부의 중요한 정책 기조 중 하나가 재정 건전성을 살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점이 빠져 아쉽다"며 "교육예산에 대한 일관성이 없는 것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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