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애먼 촌동네가 피해" 공보의 파견에 시골의료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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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애먼 촌동네가 피해" 공보의 파견에 시골의료 공백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4.03.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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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보건지소 찾은 노인들 헛걸음…"우린 어디로 가라고"
'의과 진료 중단'
이탈 전공의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수도권으로 파견된 12일 오전 전남 화순군 도암면보건지소에 '진료 중단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024.3.12 (사진=연합뉴스) 

"촌 동네 사는 노인네들은 진료도 받지 말라는 거냐. 봉합은커녕 갈등만 더 키워 애먼 시골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게 만들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수도권 등지로 파견된 지 이틀째인 12일 낮 전남 화순군 도암면보건지소.

지팡이 하나로 굽은 허리의 몸을 지탱하던 백발의 노인은 공보의 파견으로 인한 '의과 업무 중단'이라는 안내문을 보자 혀부터 끌끌 찼다.

밤사이 내린 봄비로 무릎이 쑤셔 보건지소를 힘겹게 찾았지만, 진료를 볼 공보의는 온데간데없고 불 꺼진 보건지소만 남아 있다며 하소연했다.

한평생 도암면에서 살았다는 고모(84) 씨는 "대도시 의사 부족하다고 시골 있는 의사를 데려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여기는 의사도 한명 밖에 없는데 주민들은 누구한테 의지하라는 것이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보건지소 업무 중단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해 이곳을 찾은 또 다른 노인도 "헛걸음했다"며 혼잣말했고, 4㎞가량 떨어진 병원까지 가야 한다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하루평균 10여명이 진료를 보러오는 화순군 이양면보건지소도 사정은 마찬가지.

홀로 이곳에서 진료 처방 업무를 보는 공보의가 도심 병원으로 차출되면서 보건소 업무는 중단된 상태였다.

평소 복용하던 혈압약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 보건지소를 찾은 한 여성 노인은 의사 대신 간호사가 진료를 보는 인근 진료소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불 꺼진 보건지소
이탈 전공의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수도권으로 파견된 12일 오전 전남 화순군 이양보건지소 진료실의 불이 꺼져있다. 2024.3.12 (사진=연합뉴스) 

화순군에 있는 이양·도암·이서보건지소 등 3곳은 진료 차질이 빚어지자 일주일 5일 진료를 2일로 축소하고, 타 보건지소 공보의가 순회 진료하는 자구책을 냈다.

주민들은 의료 공백 심화를 우려하며 조속한 의료 정상화를 요구했다.

고 씨는 "30분에 한 번씩 오는 버스를 타거나 차 1대에 주민 서너명이 함께 타고 군청 인근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정부와 의사 싸움에 시골에 있는 우리까지 왜 고생을 하게 하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도시 의사 채운다고 시골 의사 비운 것은 '말짱 도루묵' 정책"이라며 "서로 양보해 의료 업무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농어촌 일부 공보의들을 주요 도시 지역 병원으로 파견했다.

전남 지역에서는 267명의 공보의 중 23명이 서울·광주·충북 등지 병원으로 4월 11일까지 파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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