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역사 가르칠수 있나…'종군위안부' 없애고 강제징용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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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역사 가르칠수 있나…'종군위안부' 없애고 강제징용 축소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4.03.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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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통과 18개 日 중학 교과서 분석…역사 인식 '희석·후퇴' 곳곳에서 드러나
임진왜란 언급시 조선 피해는 건너뛰고 강제병합 서술에선 '군대 힘 배경' 삭제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 기술 약화한 日초등교과서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해 3월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어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중 일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기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사진은 현행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돼 있는 자료사진 설명을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꾼 도쿄서적 6학년 사회 교과서. 위쪽이 현행 교과서. 2023.3.28 (사진=연합뉴스) 

22일 일본 문부과학성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통과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가해 역사를 흐리는 방향으로 일부 개악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가 내년도 봄 학기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와 지리, 공민(사회) 등 사회과 교과서 총 18종을 분석한 결과 임진왜란부터 일제 식민지 지배와 태평양전쟁 조선인 강제징용까지 한일 관련 역사 기술이 후퇴했다.

◇ 임진왜란 당시 조선 피해는 건너뛰고 "일본 무사와 민중 고통"

2020년 검정을 통과한 제국서원 기존 역사 교과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의 결과에 대해 "7년에 걸친 전란으로 조선 각지의 마을들이 불타고 사원 등의 문화재가 사라져 인구는 격감했다"며 조선의 피해를 기술했다.

그러나 올해 검정을 통과한 이 출판사 교과서에선 이런 조선 측 피해를 전부 삭제하고 "두 차례 출병으로 일본에서도 무사와 민중이 병력과 전비 부담으로 고통받아 도요토미의 지배가 약해지는 원인이 됐다"며 일본 측 피해와 영향만 남겼다.

침략을 당한 조선의 피해와 관련한 내용은 삭제하고 침략자인 일본 측 피해만 부각함으로써 400년 전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가해 역사를 희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일 강제병합 "군대 힘 배경" 삭제…강압적 식민 통치 서술도 없애

현재까지도 한일 간 역사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과 이후 식민 지배에 대한 기술도 일부 개악됐다.

일본문교출판의 4년 전 역사 교과서는 한일 강제병합과 관련해 "일본은 1910년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을 병합해 식민지로 삼았다"면서 강제병합이 일제의 무력으로 인한 행위였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그러나 이 출판사의 새 교과서는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 해서'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일본은 1910년 한국을 병합해 식민지로 삼았다"고만 간략하게 서술했다.

조선총독부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 서술도 사라졌다.

일본문교출판은 새 역사 교과서에서 기존 교과서에 있던 "조선총독부는 모든 정치운동을 금지하고 신문 발행도 제한했다. 그 때문에 먼저 식민지가 됐던 대만과 마찬가지로 조선인들에게는 선거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권리와 자유도 제한됐다"는 표현을 통째로 덜어냈다.

반면 3·1운동과 관련해서는 "조선총독부는 경찰과 군대를 이용해 탄압했다"는 표현을 추가하기도 했다.

◇ 징용 표현 "혹독한 노동 강요받아"→"혹독한 환경 속에 일하기도"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강제성 관련 표현이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쿠호샤의 기존 역사 교과서에서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조선과 대만에도 징병과 징용이 적용돼 일본 광산과 공장 등에서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았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새 교과서에서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조선과 대만에도 일부 징병과 징용이 적용돼 일본 광산과 공장 등에서 혹독한 환경 속에 일한 사람들도 있었다"라고 고쳤다.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표현을 '혹독한 환경 속에 일한 사람들도 있다'로 완곡하게 바꾸고 징병과 징용 앞에 '일부'라는 표현을 붙이면서 강제징용이 식민지에서 광범위하게 강제적으로 시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애써 축소하려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도쿄서적은 기존 역사 교과서에 실었던 식민지 조선인 지원병 사진도 삭제했다.

일제는 징병제 실시 이전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이듬해 지원병 제도를 실시해 조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냈다.

이 출판사의 기존 교과서에는 사진과 함께 "동원돼 훈련하는 조선 젊은이들. 조선에서는 1938년에 육군 지원병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새 교과서에서 해당 사진은 식민 지배 당시 서울 남산에 건립된 신사인 '조선신궁'으로 대체됐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일본 각의 결정 따라 '종군위안부' 표현 없애기도

야마카와출판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기존 역사 교과서에서 "전장에 만들어진 '위안시설'에는 조선·중국·필리핀 등으로부터 여성이 모였다. (이른바 종군위안부)"고 적었지만, 새 교과서에는 조선 앞에 '일본'을 추가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라는 부분을 삭제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2021년 4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종군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가 적절하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반영해 새 교과서를 만들면서 아예 '종군위안부'라는 단어 자체를 빼면서 가해 역사 표현이 후퇴한 것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군이 관여해 태평양 전쟁 중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을 희석하기 위해 '일본'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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