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 사직행렬에 진료 축소 이어져…"환자는 죽으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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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교수 사직행렬에 진료 축소 이어져…"환자는 죽으란 거냐"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4.03.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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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의대 교수도 사표 제출 시작…29일까지 규모 커질 전망
진료 축소에 환자 불안감 커져…전국서 '의료 정상화 촉구' 집회
장기화하는 의정 갈등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 26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3.26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5월에 2천명 증원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으면서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가운데 27일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의정(醫政) 간 대화창구 마련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이를 지켜보는 환자들은 '사태 장기화'를 걱정하고 있다.

◇ 의대 교수 사직 행렬 이어져…사직서 제출 규모 커질 듯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날까지 비대위에 사직서를 전달한 교수는 총정원 283명 중 50여명이다.

조선대는 의대교수 161명 가운데 33명이 사직서를 냈다.

900∼1천명의 교원이 재직하는 울산의대의 경우 교수 433명의 사직서가 대학 측에 제출됐다.

제주대는 이날 오전까지 의과대학 교수 153명 중 10여 명이 사직서를 냈다.

충남 천안의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는 233명 의대 교수 가운데 지금까지 100명 안팎의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충북대병원도 교수 200여명 가운데 최소 50명 이상이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대학교 의대 겸직교수 1명은 전날 직접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 경상국립대 의대에서는 이날까지 전체 260여명 중 25명의 교수가 사직서를 냈다.

충남대병원 로비에 호소문
27일 오전 대전시 중구 대사동 충남대학교병원 로비에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교수협의회 및 산하 비상대책위원회의 호소문이 붙어있다. 2024.3.27 (사진=연합뉴스)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피해가 갈 경우 사직서를 내겠다고 뜻을 모았던 계명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 오전부터 개별적으로 사표를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의대 교수들이 대부분 29일까지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인 가운데, 이번 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는 교수들의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 외래진료 축소 움직임…'사태 해결' 교수 호소 이어져

전공의 이탈 사태 장기화로 누적된 피로도는 진료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과업으로 피로도가 누적되다 보니 외래 진료를 개인적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의료진 부족에 대비해 지난 21일 제주대병원과 제주한라병원에 공보의 5명을 파견한 데 이어 25일에도 제주대에 군의관 2명을 긴급 파견했다.

전남대와 조선대 의대 비대위는 사직서 수리 전까지 중증·응급 관련 부서부터 '52시간 준수' 형태의 준법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각 병원에서는 내주부터 교수들의 근무 시간 축소가 가시화할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대학병원에 붙은 휴진 안내
전국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3.26 (사진=연합뉴스) 

전북대병원은 최근 병원에 의료계 현황 문제로 일부 진료과 진료 시간이 제한됨에 따라 '환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안내문에는 안과 응급진료가 오전 9시부터 18시까지, 성형외과 응급진료가 7시부터 22시까지 이외 시간에는 응급 수술을 제외한 다른 진료가 불가하다고 안내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일부 교수는 호소문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재환 충남대 심장내과 교수는 전날 사직의 변을 통해 "매년 100일씩 당직하며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일해왔지만, 저를 지탱해왔던 교수로서 자부심과 보람은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바뀌었다"며 "이제 교수직을 내려놓으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병원 외래는 오늘도 경증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장시간의 대기와 3분 진료에 만족할 분은 없을 것"이라면서 "불합리한 현실이 언젠가는 개선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엉뚱한 2천명 증원과 전공의 사직으로 희망이 무너졌다. 의료의 미래가 사라진 이 땅에서 필수 의료에 몸담을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도 전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 정부가 2천명이라는 근거 없는 족쇄를 풀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도록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의정갈등
전국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내원객이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있다. 2024.3.26 (사진=연합뉴스) 

◇ 환자들 "죽으라는 거냐"…전국서 '진료 정상화 촉구' 집회도

4기 유방암 판정을 받은 60대 어머니를 모시고 충북대병원 종양혈액내과를 방문한 딸 A(30대)씨는 "수술이 불가능한 단계라 최소 3주에 한 번씩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교수들마저 그만두면 이 주기가 길어질까 봐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환자 생명을 가지고 그러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막상 진료과 교수님을 뵙게 되면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90도로 허리를 숙이게 된다"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신장내과에서 만난 70대 전모씨는 "신장 기능이 15%밖에 남지 않아 매달 정기 검진을 오는데, 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고 한다"며 "교수들이 사직하면 우리 같은 환자들은 죽으라는 거냐"며 가슴을 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의료정상화를 촉구하는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정부와 의사 집단은 환자들을 생명의 위험으로 내몰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의료공백 사태를 방치하지 말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이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의료공백 사태의 해결은 정부의 책임이 있어야 한다"며 "이는 시장 의료가 아닌 공공의료 강화를 통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조합원은 한국의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이 시장 중심의 의료시스템에 있다고 짚으며 공공의료 확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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