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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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은 오나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4.08.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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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손 고문은 인품이나 자질 면에서는 대통령감 1순위다. 하지만 지지도는 그런 평가를 좀처럼 받쳐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손 고문이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국민은 후보의 인품이나 자질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이미지를 보고 투표한다. 손 고문에게는 강렬한 이미지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이면서도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정계은퇴 선언 이후 그에 대한 정치적 재평가가 활발해지고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이 보기 좋다” “한국 정치의 큰 손실이다” 등의 평가가 그렇다. 사실 손 고문과 같은 경험과 경륜을 가진 정치인을 현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대학 졸업 후 민주화운동 8년, 영국 유학 7년, 학계 5년 등 정치권 밖에서 보낸 20년은 인고의 준비 기간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넘나들며 21년 동안 경륜을 쌓았다. 신한국당 등에서는 여러 당직과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고, 민주당에서는 당 대표에까지 올랐다. 그때마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라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손 고문은 대학 시절 무기정학 중에 무기정학을 받았을 정도로 열혈 운동권이었다. 그런 과거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격하하지도 않는 그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그의 이념 지향과 통합의 정치 노선 등 ‘손학규식 제3의 길’은 그런 깊은 고민과 공부와 경험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정성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바탕에서 나온 그의 정치적 꿈의 결정판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스털린의 역설(경제가 성장한 만큼 사람들의 행복감은 늘지 않는다는 경제이론), 아니 그 함정에 빠져 있다. 성장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 함정에서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삶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시장경제, 즉 경제 민주주의, 복지, 진보적 성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에서)

손 고문의 은퇴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의 정치적 실패는 우울하다. 돈보다 생명, 성장보다 행복을 중심에 두는 정치에 대한 현실적 기대를 기약 없이 미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이제 누가 만들 것인가. 아니 그런 정치를 누가 할 것인가.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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