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을 '불태운' 광주비엔날레…주제 '통일성'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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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을 '불태운' 광주비엔날레…주제 '통일성' 드러내
  • 강금단 기자
  • 승인 2014.09.04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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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일간의 여정 시작…38개국 작가 111명(103개팀) 참여

천천히 버스에서 내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이 광주 오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은 검은색 천으로 눈을 가린 상태였다. "이데올로기의 인질"이라는 의미에서다.

이들은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발굴된 유해가 보관된 컨테이너로 향해 함께 추모제를 지냈다. 광주의 비극과 한국전쟁의 비극이 함께 만나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는 순간이다.

2014 광주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3일 오후 비엔날레 전시관 광장에서 작가 임민욱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가 진행됐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이번 퍼포먼스에 대해 임민욱은 "고통을 환대하고 나누는 여정"이라며 "또 다른 종착지이자 출발지"라고 했다.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는 주제로 열리는 2014 광주비엔날레가 이날 프레스 오픈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66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4일 오후 개막식을 앞둔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여느 해보다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12년 열린 광주비엔날레가 아시아 출신 여성 전문가 6명의 공동감독 체제로 운영되며 '6인(人) 6색(色)'의 전시를 펼친 데 비해 올해는 통일된 주제하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꽃과 연기를 모티브로 해 픽셀 작업으로 제작한 디자인 스튜디오 엘 울티모 그리토의 벽지는 전시장 전체를 둘러싸며 통일성을 더한다.

"매체의 다양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제시카 모건 총감독의 말처럼 38개국의 작가 111명(103개팀)이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에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형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제시카 모건 총감독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품 중에 터전을 불태우는 행위를 표현한 작품이 많다"며 "지리적 장소이든 물리적이든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개념이든 이를 불태우려는 예술가의 시도가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였던 제레미 델러는 전시장 전면에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거대한 문어 모양의 배너를 선보인다. 미국 작가 스털링 루비는 야외에서 나무를 실제로 태우는 대형 난로 작품을 통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함축해 표현한다.

집과 도시 풍경 등 '터전'을 강조한 작품들도 다수 선보인다.

스위스 출신 우르스 피셔는 전시장에 자신의 뉴욕 아파트를 옮겨 왔다. 딸의 침실과 응접실 등 실내 공간을 복제한 극사실주의 벽지는 관람객에게 실제 공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피셔가 재창조한 '터전'에는 패션 디자이너 카롤 크리스티안 푈을 비롯해 팝 아티스트 조지 콘도, 일본 사진작가 도모코 요네다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레바논 작가 아크람 자타리는 베이루트의 빠르게 바뀌는 풍경을 담았다.

'체제전복적'인 주제에 걸맞게 전시작 상당수는 다소 직접적으로 억압과 통제가 이뤄지는 사회 상황을 꼬집는다.

사진작가 김영수는 주변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물고문과 통닭구이, 전기고문, 혀 뽑기 등 고문 장면을 연출해 국가 안보를 담보로 무고한 시민을 연행해 고문을 일삼던 당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낸시 레딘 키엔홀츠는 군사 독재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전시되는 곳에서 "당신은 정부에 만족하십니까"라고 질문한 설문조사 결과를 작품 중심에 위치한 인물상에 적는다. 광주에서의 설문조사 결과는 '아니다'(NO)였다.

근대적 삶을 그리는 중국 작가 류 샤오동은 베이징과 대만의 군인 모습을 선보인다.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인 작가 이완은 비디오테이프, 바구니, 가위, 거울, 시계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수집한 사물과 이들이 버려졌던 장소를 나란히 배치했다.

올해는 참여 작가의 90% 이상이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는 신진 작가로 구성됐다. 이불, 윤석남, 성능경 등 중견 작가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시카 모건 총감독은 "어떤 물질을 태우면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며 "이런 변화가 반영되고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공간 구성을 통해 실험적이고 참신한 현대 미술의 장이 펼쳐지긴 했으나 주제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출품작 대부분이 은유보다는 직설 화법에 가깝게 느껴지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전시가 다소 산만했다"면서 "단어는 나열했는데 문장은 안 만들어진 것처럼 문제 제기는 했는데 결론을 못 내린 듯한 전시"라고 평가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사실상 미술관 전시의 구조로 구성돼 기존 비엔날레에서 패턴화된 산발적이고 이슈가 되는 내용보다 공공성을 염두에 둔 기획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본행사에 앞서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을 두고 논란이 됐던 것과 관련, "터전이 조금 일찍 불타기 시작했다"면서 "광주비엔날레는 단순한 현대미술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문화·정치·사회·미학적 담론을 형성하는 곳으로 이 자체가 토론의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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