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풍진세상>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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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
  • 연합뉴스
  • 승인 2016.12.2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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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연초 강남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모인 인파

경제 위기론의 한복판에서 최순실 사태가 두 달 가까이 국정을 잠식하자 이러다가 민생이 붕괴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여러 위기가 중첩됐지만 공포의 근원은 1천300조 원을 훌쩍 넘긴 가계부채다. 이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대책 없이 아파트 투기를 부추긴 결과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아파트값이 끝없이 오를 줄 알았으나 잔치는 끝났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돈줄 죄기에 나서면서 세계는 긴축 모드로 접어들고 있다.

집값이 하향 곡선으로 기울고 부채의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우리의 현실이 주택금융 부실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상황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졌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일부 지역 신규 아파트 분양권의 전매 비율은 40%가 넘었다. 아파트가 가족의 주거 공간이 아니라 투기꾼들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금리 상승으로 가계부채가 터지면 그 충격은 선량한 사람들이 떠안아야 한다. 치솟는 집값과 전세금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파트 매입의 막차에 오른 일반 실수요자들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계획대로 금리를 올리면 기준금리가 내년 말엔 1.25%로 높아지고 내후년엔 2%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25%임을 고려할 때 우리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시기를 맞게 된다.

가계부채가 과도하다는 지표와 수치의 경고는 끝이 없다. 지난 3년간 약 30%, 무려 300조 원이 늘었다. 경제성장률이 연 2%대에서 헤맨 것을 감안하면 전대미문의 폭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로 신흥국 가운데 1위이며, 8년 전 미국 금융위기 당시의 100%에 근접하고 있다. 이 비율은 일본이 66%, 유로존이 60% 수준이다.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는 160%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0%)을 훌쩍 넘는다. 국민 1인당 평균부채는 2천600만 원이지만 빚진 개인 채무자의 평균부채는 8천만 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다. 쓸 돈이 없으니 소비절벽은 당연하다.

가계부채가 터지면 국민경제 전반이 무너진다. 분위기는 악화하고 있다.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 모두 비상이다. 수출은 19개월째 계속되던 마이너스 행진이 지난 7월 일단 멈췄으나 여전히 부진하다.

이는 제조업에 타격을 가해 기업의 수익성과 고용을 악화시키고 있다. 청년실업률과 제조업 가동률은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수준이다. 기업과 가계 부실의 증가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경제활동의 주축인 40대(40∼49세) 가구주의 월평균 소득이 지난 3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것은 충격적이다. 가계 전반의 경제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올해 2.6%에서 내년엔 2.4%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측했다. 민간연구기관의 전망치는 대체로 2% 초중반이다. 한국은행은 2.8%, 정부는 3.0%를 예상하지만 경제 여건 악화를 반영해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2%도 어렵다는 비관론을 내놓고 있다.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선 적정수준의 성장과 함께 가계의 소득이 늘어야 하지만 기대할 수 없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분출하는 사회갈등도 경제에 큰 부담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대선 일정, 차기 정권의 안착까지는 불투명의 연속이다. 이는 경제 주체의 심리와 행동을 제약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최순실 사태로 극도로 악화한 반기업정서도 심각하다. 최 씨와 거래한 재벌 총수들에 대한 구속은 물론 재벌 해체 요구까지 분출하고 있다. 차기 정권이 민심을 명분 삼아 징벌적 재벌 개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복합적 경제 위기가 고속으로 몰려오는데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에서 보았듯 정부는 당면한 위기를 해결할 의지나 실력이 없다.

경제의 안전판인 재정과 통화정책 가운데 통화정책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사실상 어려워졌고, 경제의 기초 체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도 정치 리더십 부재로 물 건너갔다. 문제가 닥치면 그나마 한 줄기 목숨줄인 재정으로 대처해야 하지만 이는 뒷북일 뿐이다.

가계부채가 국가적 시한폭탄이라는 것은 모두 알지만 누구도 이거다 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정부는 경기 악화를 우려해 미봉책으로 때우려 하고, 정치권은 대권 놀음에 빠져 관심조차 없다.

빚은 일정 기간 돌려막기로 버틸 수 있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통제 불능이다. 일부 전문가는 그 시기를 2018년으로 예상한다. 2016∼2018년에 이뤄지는 100만 채 아파트 입주의 정점이자,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드러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위기의 실체와 예상되는 결과를 알기에 수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계부채는 정부와 정치권, 금융기관, 채무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지금부터라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이 혼란의 시기에 누구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길 꺼린다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당장 주도면밀하게 뇌관 제거 작업에 나서지 않으면 차기 정권 5년은 가계부채가 악몽이 될지 모른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촛불시위에 직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다음 정권에 가까운 정당과 대권 후보일수록 이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새 정권의 드높은 꿈이 가계부채 폭발로 침몰한다면 참으로 허망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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