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둑이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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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둑이 무너지나
  • 연합뉴스
  • 승인 2016.10.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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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논설위원

하늘 아래 공짜는 없다. '무상'이나 '반값'이라는 말이 들어간 정치인들의 공약이 쌓이면 결국 세금을 올려야 하는 건 필연이다. 그 세금을 누구 주머니를 털어 마련하느냐만 남는다.

역대 정권은 세출 구조조정이나 지하경제 양성화,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의 세입 확충을 통해 복지 예산을 짜냈으나 한계에 달하자 나랏빚을 야금야금 키울 수밖에 없었다.

광속으로 진행되는 고령화, 국가의 장래를 암담하게 하는 저출산 사회에 대응하려면 복지비의 급속한 증가는 피할 수 없다. 이젠 선택해야 한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처럼 복지 재정을 계속 빚에 의존하다 파탄을 맞을 것이냐 아니면 세금을 올려 해결할 것이냐.

증세는 전쟁이다. 복지는 누구나 좋다고 받아먹지만 제 돈으로 하는 건 생피가 뽑힌다고 생각한다.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하니 기업이 들고 일어난다. 소득세를 건드리면 봉급생활자들이 가만 있겠는가. 부가가치세(소비세)를 얘기하면 일반 국민, 특히 자영업자들이 봉기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빈부 격차가 심화하자 분배 문제가 핫 이슈가 됐다. 여기에 침체한 경제, 고갈되는 청년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가 겹치면서 사회ㆍ경제적 격차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가 정치 구호가 됐고, 2010년 지방선거 이래 선거 때마다 등장한 각 정당의 무상 복지 공약이 분배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잔뜩 키워놨다. 보수정권이건 진보정권이건 복지의 목록을 경쟁적으로 늘리며 재정부담을 가중했다.

복지를 키운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사회 전반의 복지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건 시대적 요구다.

문제는 복지를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느 수준까지 확대해야 하는지, 보편복지인지 선별복지인지, 복지의 재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선거 때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즉흥적으로 복지 공약을 이용했다. 그래서 늘 재원이 문제가 됐다.

작년부터 신물 나게 계속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누리과정 예산 갈등, 파탄 상태에 이른 지방 재정 등을 보라. 지금 수준의 복지 유지를 위한 지출의 자연 증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증세 외의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세금을 올린다는 건 경제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 전략이다.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부자증세를 택했다. 더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때 25%에서 22%로 내렸던 법인세를 원상복구 하겠다는 법안을 내놨다. 또 과표 5억 원을 넘는 고소득자에 대해 현행 최고 소득세율인 38%를 41%로 높이는 세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과거 두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은 크게 성장하고 돈을 벌어 곳간에 쌓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고 근로자의 소득도 정체했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사라졌다. 그러니 기업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해 분배 정의를 세워보자. 이게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측의 논점일 것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수치로 논리를 정당화한다.

더민주당 안대로 법인세를 올리면 그 대상(과표 500억원 이상)은 400여 개 대기업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인상될 경우 해당자는 2만명에 못 미친다.

여권은 이를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한 징벌적 증세라고 반대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권의 기세를 막기엔 힘이 부쳐 보인다.

왜 법인세를 올려선 안 되는지에 대한 논리도 단단하지 않다. 세계적 흐름이 기업의 기를 살리기 위해 법인세를 깎아주고 있다거나 세 부담 증가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면 고용과 투자, 외국 기업 유치가 줄어 오히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여권은 '증세 없는 복지'를 고수하는 정부의 방침을 따르고 있지만 대선 경쟁이 본격화하면 이 문제를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다. 여당의 대권 주자들도 증세론에 대해 찬반이 갈리고 있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그 게 법인세여야 하는지 아니면 일반 소득세나 부가가치세여야 하는지는 국가 경제 전반을 조망하는 냉정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더민주당 안으로 법인세를 올린다면 연간 약 4조 원 안팎을 더 거둘 수 있다. 소득세 추가 세수는 연간 약 6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늘어나는 복지비용을 감안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적어도 10년, 20년 앞을 내다본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소득세와 부가세를 올리고 법인세는 낮추는 흐름이다. 작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부가세율은 19.2%(한국은 10%), 최고 소득세율은 35.9%(한국은 38%), 평균 법인세율은 22.9%(한국은 22%)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17.9%로 OECD 평균인 25.1%보다 크게 낮다.

이렇게 본다면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부가세나 소득세를 올릴 여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샐러리맨 2명 가운데 한 명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 원천적으로 붙는 부가세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여유가 있는 기업이나 고소득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 요구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법인세만으로 복지 재원을 해결할 수 없다면 부가세나 개별소득세 인상에 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여론이 무섭다고 이를 외면해선 눈덩이처럼 불어날 복지비 문제를 풀 길이 없다.

보편복지를 지향한다면 보편 과세가 맞다. 고부담 고복지의 북유럽 복지모델이 부럽다면 직업이 있는 사람은 소득의 50% 이상을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중부담-중복지가 지향점이라면 그에 맞는 재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복지 재원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복지를 구조조정해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선별복지로 가야 한다.

물론 증세와 복지가 기댈 언덕은 경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가 적정 수준의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면 복지의 토대가 무너진다. 한쪽에서는 증세를 통한 복지보다는 성장을 통한 복지 여력 확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출·대기업 주도의 성장이 한계에 달한 만큼 복지 확대를 통한 성장 동력 회복으로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맞선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 올인할 이유는 없다. 양 극단보다는 성장과 복지를 아우르는 전략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은 5%였던 소비세(부가가치세)를 8%로 올린 뒤 이를 2017년 4월까지 10%로 높이기로 했다가 2019년 10월로 미뤘다. 국민의 반발이 크고 소비에 미칠 타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세금에 손을 대야 한다면 투자나 소비, 고용 등 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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