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토종벌 올해도 초토화 "언제까지 대책 미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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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토종벌 올해도 초토화 "언제까지 대책 미룰 건가"
  • 연합뉴스
  • 승인 2018.06.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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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토종벌 농가, 낭충봉아부패병 폐사 토종벌통 소각
2010년 이래 해마다 7만군 토종벌 폐사…방역 대책 차일피일 지연
▲ 불태워지는 벌통 11일 오후 전남 곡성군 죽곡면 보성강변에서 한봉 농민들이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려 폐사한 벌통을 불태우고 있다. 2018.6.11 (곡성=연합뉴스)

"병 걸린 벌이 튀어나오면 어쩐다냐… 얼른 태워라잉."

11일 오후 전남 곡성군 죽곡면 보성강 변에 벌통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토종벌을 키우는 한봉(토종벌) 농민들은 이날 벌과 애벌레가 모조리 죽어 폐허가 된 벌통을 트럭에 싣고 이곳에 모였다.

입에 담배를 물고 트럭에서 싣고 온 벌통을 던져 쌓는 농민들의 표정은 이제는 지쳤다는 듯 무심했고,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더 무거웠다.

2m 높이로 쌓인 벌통 안에는 밀랍이 남아 있어 자그마한 불씨에도 금세 거센 불길을 품어냈다.

벌통에서 겨우 살아 있던 토종벌은 뜨거운 화염에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따가운 일침을 안기고 힘없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 '병에 걸린 벌 못 빠져 나오게'

곡성군 죽곡면에서 토종벌을 기르는 김충련(61) 씨가 올해 자신의 벌통에 낭충봉아부패병이 덮친 것을 안 것은 지난 4월 말께다.

번데기로 커나가야 시기에 애벌레들은 벌통에서 몸에 물이 가득 찬 채 비실댔다.

지난해에도 같은 병으로 기르던 벌을 모조리 잃은 김씨는 "활동을 멈추고, 죽어 나가는 벌을 보니 미쳐버릴 것 만 같았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전남 곡성군에만 전체 한봉농가 26곳 중 절반 이상인 14곳에서 피해를 봐 100여개의 벌통이 소각 처분됐다.

전국에서는 올해도 약 7만여개의 벌통이 피해를 볼 것으로 한봉협회 측은 예상했다.

▲ 토종벌 소각하는 농민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은 한국형 바이러스가 토종벌 즉 한봉에 일으키는 전염병이다.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고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없는 탓에 피해가 극심해 토종벌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양봉 즉 서양 벌이 걸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며칠 만에 낫는 몸살감기' 수준이라면, 토종벌을 감염시키는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은 '스페인 독감,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보다 독하다'고 알려졌다.

감염경로는 꽃가루로, 병에 걸린 일벌이 꽃가루에 남아 있는 바이러스를 다른 벌통에 있는 벌의 몸에 묻혀 전파된다.

한 곳에서 병이 발병되면 벌의 활동반경에 있는 반경 6㎞ 이내의 벌이 모조리 이 병에 걸릴 정도로 무서운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낭충봉아부패병도 제2종 법정 감염병이지만,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과 같은 살처분은 보상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곡성군 한봉농민들이 이날 한자리에 모여 병에 걸린 벌통을 소각한 것은 병의 흔적을 없애 내년에는 병을 예방해보고자 하는 나름의 고육책이기도 하다.

▲ 낭충봉아부패병 걸린 토종벌통 소각

전국한봉협회 김대립 한봉복원 비대위원장은 "약제 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살처분 대책이 필요하지만, 차일피일 실행이 미뤄지고 있다"며 "2010년 대발생이 후 9년째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더는 살처분을 미루지 말고 효과적인 방역 대책을 구축해야 토종벌 멸종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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