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논란 시립 소년소녀합창단장 자진 사임
상태바
'체' 논란 시립 소년소녀합창단장 자진 사임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3.09.05 1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의 열정과 노력이 티셔츠 한 장에 짓밟혔다"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단원들에게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옷을 입혀 무대에 올려 논란이 일었던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지휘자가 4일 사임의 뜻을 밝혔다.

이씨는 이날 배포한 사임사를 통해 "눈 깜짝할 사이, 나라를 팔아먹은 중죄인이 되어 있었다"며 "오늘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지휘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기분 좋게 공연 잘 하고 내려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뉴스들, 상상 이상의 댓글들을 보며 단원들이 끊임없이 걱정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을 행하고 지원하는 이 곳에서 익히 통용되는 사고는 '너무 열심히 하려하지 말고, 머리 아프게 시끄럽게 하지도 말고, 척 잡힐 짓은 아예 하지도 말고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경직된 무사안일주의적 사고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씨는 "항상 변화와 창조라는 그럴듯한 팻말을 겉으로는 내세우지만 그것을 행하는데 있어 뭔가가 머리아파지고 시끄러워지면 슬며시 발을 빼는 일관성 없는 환경이다"고 공직사회의 풍토를 꼬집었다.

이씨는 "이미지와 색 배열에 지나지 않았던 그 티셔츠가 그렇게까지 문제될 소지가 다분했다면 행사 전 날 오후 내내 길었던 리허설에도, 당일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왜 아무에게도 작은 충고조차 들을 수 없었는지 의아스럽다"며 "우리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내용물이 아닌 포장지 색에 불과했던 티셔츠 한 장에 짓밟히고 가리워졌다"고 지적했다.

또 이씨는 "일명 '체 게바라 티셔츠' 소동은 징계 안하기로 마무리되면서 제자리로 돌아와 보이는 것 같겠지만, 실제로는 긴 시간 힘들게 모으고 다져왔던 우리들의 특별한 에너지를 산산조각 냈다"고 밝혔다.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옷을 입고 공연을 해 "행사 취지와 적합하지 않다"는 광주보훈청장의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후 광주시가 이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사회 각계에서 "후진적 문화 마인드"라는 비판이 일자 징계를 철회키로 했다.

<성명서 전문>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를 사임하며

'WISH TO FLY'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를 사임하며
 

지난 모든 시간들이 어떤 의미를 갖을 수 있었는지. 그 해답을 아주 또렷이 듣는듯한, 지난 20일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부로 광주시립소녀소녀합창단의 지휘자직을 사퇴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 나라를 팔아먹은 중죄인이 되어있었습니다.
광복절 행사가 끝난 직후, 상황 파악을 위한 경위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진상을 파악한다는 명목 아래, 관은 질문지를 작성해 메일로 보낼 것, 원래는 심문을 해야하는 데 이것은 예우를 해주는 차원임을 분명히 알 것, 그리고 1차 출석, 2차 출석을 통보 받았습니다.

광복절 바로 다음날은, 이른 아침부터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고 나갔지만, 더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말씀만 듣고 나오는 길, “곧 징계가 올라갈 것“ 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몇시간 후, “중징계, 정직… 사실상 해촉”이라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순간, 너무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중징계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두려웠다면 그동안 그리 힘들고 어렵게 무대를 올리려하지 않았겠지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곤 했겠지요.

그 순간 생각나는 것은 단 하나, 기분좋게 공연 잘 하고 내려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뉴스들, 상상 이상의 댓글들을 보며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는 우리 단원들이었습니다.

이럴 수 있는건지. 아무리 몇몇 여론의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간다 할지라도 아직 징계도 올라가지 않은 상황에서 이리 앞서가는 기사가 보도될 수 있는 건지. 이 파장이 개인이 아닌, 한 단체의 구성원들 모두와 연계되었음을 한 번 더 인지하셨던 것인지….

가슴에서 뜨거움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을 행하고 지원하는 이 곳에서 익히 통용되는 사고는 “너무 열심히 하려하지 말고, 머리 아프게 시끄럽게 하지도 말고, 책 잡힐 짓은 아예 하지도 말고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 이라는 경직된 무사안일주의적 사고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틀을 깨고 용기있게 나아가야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신 하나로, 제게 주어진 예술창작에 올인했던 지난 3년 8개월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30여 년 전,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원이었던 저는 2010년, 제가 이 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 30년이란 시간 만큼 단원들의 정보력이나 사고의 수준, 감각적 능력과 요구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구색 맞추기’의 음악 안에 갇혀있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이들에게 시대에 맞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선배이자 지휘자인 제가 해야할 일 이었습니다.
실제로 두 번의 ‘세계 합창 올림픽’ 도전을 통해 확인한 ‘언어를 넘어선 음악의 뜨거운 힘’과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의 메시지 전달력’을 무대로 구현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공연을 통해 던지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퍼포먼스로 상상의 통로를 확장할 수 있는지. 우리 청소년 단원들과 울고 웃고 부대끼고 뒹굴며 하나되어 가는 과정은 고되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은 참으로 든든하고 오지고 뭉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틀을 깨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부풀린 추측들, 비난들, 그로 인해 겪는 일련의 과정들과 과정들은 매우 고독하고 수치스럽고 수준 이하였습니다.

따져묻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무대창작에 전력을 다했고, 감동있는 무대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항상 ‘변화와 창조’라는 그럴듯한 팻말을 겉으로는 내세우지만, 그것을 행하는데 있어 뭔가가 머리 아파지고 시끄러워지면 슬며시 발을 빼는 일관성 없는 환경, 또 조직적으로 파벌을 조성해 해보려고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머리 아프고, 시끄럽고, 문제가 있는 자’를 만드는 성숙치 못한 환경에서굚 이 때묻지 않은 청소년들을 데리고 과연 소신있게 얼마만큼 나아갈 수 있을지. 매 번 공연을 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묻곤 했습니다.

사실 현재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소년소녀’라는 작은 틀 안에 갇히기에는 이미 초·중·고 단원들 그리고 세 명의 파트장이 대학생인 구성원 자체가 폭이 넓습니다.

그러니 생각없는 아이들을 지휘자가 이용한다는 앞뒤 안맞는 논리를 펼치기에는 단원들은 너무 크고, 똑똑하고, 사고가 깊고, 사리가 분명하지요.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폭의 단원들이 수용되고 그것이 몇 년이상 유지될 수 있는 데에는 단원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무대가, 주어진 어떤 일들보다 우선순위의 존재감으로 의미를 갖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부임한 이후, 근 4년 동안 이 폭발적인 에너지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잘하는 것은 쉽지만 이것이 유지되어 간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열정이 하나됨으로 똘똘 뭉쳐야하는지 이미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뿐만아니라 정도와 순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무대를 마주하고, 음악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 있는 힘껏 품어낼 줄 아는, 우리 단원들만이 갖고 있는 패기와 열정은 어른들은 결코 흉내낼 수 조차 없는 무궁무진한 세계,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에너지의 특별함은 공연 때마다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과 매번 전석 매진이 이를 입증했으며, 공연이 끝난 후, 광주문화예술회관 게시판에는 감탄섞인 공연후기가 늘 줄을 잇곤 했습니다.

그것을 시에서도 알고 있었기에 7개 예술단체 중에 유일한 아마추어 단체로 불리우며, 늘 식전행사에만 초대되었던 우리 단체가 이번 광복절에는 본 식에 초대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광주광역시로부터 8월 15일 ‘광복절 경축행사’를 의뢰받았던 취지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미래를 향한 청소년들만의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행사를 빛내달라. 여러분이 출연해주면 그 어느때보다 뜻깊고 감동적인 무대가 될 것’ 이었습니다.

‘아리랑’, ‘광주는 빛’ 이 두 곡의 축하노래가 울려퍼지던 뜨거운 현장의 분위기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여기저기 탄성으로 화답하고 흥겨워 해주던 관객 여러분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있는 힘껏 에너지를 품어내던 우리 단원들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미지와 색 배열에 지나지 않았던 그 티셔츠가 그렇게까지 문제될 소지가 다분한 것이었다면, 행사 전 날 오후 내내 그 길었던 리허설에도, 당일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왜, 아무에게도, 작은 충고조차 들을 수 없었는지 참으로 의아스럽습니다.

선율 한마디, 악기 편곡 한 프레이즈, 퍼포먼스 몸짓 한동작 한동작에 실었던 우리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내용물이 아닌 포장지 색에 불과했던 티셔츠 한 장에 그토록 짓밟히고, 가리워질 수 있었는지.
편협되고 엄격한 잣대, 보수주의적 시각에서 경직되고 엄숙한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이 그리도 중요했다면, 왜 자유분방한 청소년들의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그토록 원하셨는지, 몇 번을 되묻고 싶었습니다.

더욱 황당했던 것은 그 티셔츠를 입고 문화예술회관을 누비며 연습을 생활화했던 시간이 얼마인데, 그렇게도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었던 건지 였습니다.
최근 불거진 일명 체 게바라 티셔츠 소동은 ‘징계 안하기로!’ 마무리 되면서 겉으로는 제자리로 돌아와 보이는 것 같았겠습니다만, 실제로 그 긴 시간 그토록 힘들게 모으고 다져왔던 우리들의 특별한 에너지들을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들의 에너지를 아우르고 이끌어 내 무대를 창작했던 제가 더 이상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었던 시간들. 그 희생과 열정의 산물들이 과연 이 도시의 현 환경에서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그 모든 노력의 시간들이 무대를 통해 차곡차곡 쌓여질 때, 진정한 새 장이 열릴 것이라는 확고한 소신은 허상에 불과했는지. 심한 자괴감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부로 이 고독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열심히 밭을 일구는 참 예술인이고 싶었습니다.
그랬기에 사심없이, 어떤 어려움과 곤란한 주어짐에도 몸사리지 않고, 당당히 임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무대를 향한 창작작업도 늘 확고한 소신을 가질 수 있었고 항상 고된만큼 보람되었습니다.
세계인들과 소통될 수 있는 청소년들만의 감동코드, 즉, 우리 청소년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성과 개성의 최대치를 이끌어 그 내용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자 했습니다.

가슴에 음악이 살아숨쉬고, 무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 단원들이 진정 문화수도 광주의 ‘홍보사절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며…. “백 날 예술을 행한다 해봐야,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아. 문화예술회관의 시립예술단은 예술보다 직장의 개념이야. 어차피 변하는 건 하나도 없어!!“

네. 그런 세월이 너무도 길었었나 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고가 어울리지 않는 이 곳에 너무 오래 계셨나 봅니다.

항상 안쓰럽고 염려하는 듯 지휘자를 보좌하는 가면을 쓰고, 그 이면으론 해보려는 직원들까지 헷갈리고 힘들게 하셨던 그분에게, 이제는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참 예술을 행하는 곳이요, 수많은 땀과 희생으로 탄생된 창작품이 원활하게 무대에 올려질 수 있게 돕는 형식이 아닌, 마음을 다해 돕는 역할이 그 직장의 본분이며, 당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은 언젠가 변해있을 거라고!”

마지막으로 순수한 맘으로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했던 단원 여러분들과 무대를 함께 만들었던 선생님들께 미안하고 고마음을 전합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힘들고도 찬란했던 시간들이 더욱 빛날 수 있었고, 이것은 광주가 진정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서는 날, 분명 더 큰 결실로 보상받을 것이라 확신해 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함으로 다시 나를 채우는 것’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부족한 저를 돌아보고, 그동안의 값진 경험을 통해 얻은 배움과 깨달음들으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학업을 통해 완성시켜 보고자 합니다.

본의 아니게 이번 체 게바라 의상을 통해 광주가 안아야했던 가슴 아픈 생채기는 훗날, 완성된 무대로 보답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